어느푸른저녁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

시월의숲 2013. 12. 15. 00:42

'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를 보고왔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끝난 후 들었던 허전함을 '호빗'이 채워주고 있다. 비록 '호빗'이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여러 에피소드들과 조금씩 겹치는 면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난쟁이들이 요정들의 숲속에 갇혔다가 술통을 타고 탈출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극장안은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나는 삼십분을 걸어서 영화관에 갔다. 집에서 나올 때는 추운듯 했는데, 영화관에 도착할 때쯤 되니까 좀 더웠다. 표를 끊고 아이스티를 한 잔 사서 자리에 앉았다. 삼부작의 두 번째 편이 그렇듯 영화는 3부를 기대하게 만들면서 끝이 났다. 극장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다 나가길 기다렸다. 나는 천천히 일어서서 외투를 입고 극장을 나왔다. 밖은 해가 져서 어두웠는데, 온도는 좀 더 올라간 것 같았다. 집에 가서 저녁밥을 챙겨먹기가 귀찮아서 영화관 옆에 있는 롯데리아에 가 햄버거를 샀다. 햄버거가 든 봉지를 손에 들고 천천히 걸었다. 몇 개의 횡단보도를 건너고, 시끄럽고 환한 가전제품 가게를 지나, 언덕을 오르고 내렸다. 집으로 가기 전 세 번째 횡단보도를 건너자 애견가게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유리창으로 하얀 강아지 두 마리가 서로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강아지들이 장난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처럼 발걸음을 멈추고 강아지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사람들을 뒤로한채 집으로 걸었다. 저녁의 도로는 쓸데없이 시끄럽고, 조금은 적막했으며, 환한 간판이 오히려 어둠을 드러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연립사택의 강화문을 열고 들어서자 복도에 누런 고양이 한 마리가 서성이고 있었다. 고양이는 나를 보자 당황하여 도망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나를 지나치지 않고서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모든 문이 닫혀 있는데, 어떻게 고양이가 들어왔는지 의아했다. 당황한 고양이는 내 앞을 쏜살같이 지나갔는데, 속도가 빨라서인지, 바닥이 미끄러워서인지 커브를 틀다 한 번 헛발질을 하면서 미끄러졌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를 위협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다니. 내가 위협적인 것이 될 수 있다니. 고양이는 열려있는 창고로 사라졌는데, 창고에 들어가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왔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햄버거를 먹었다. 케이블 채널에서 반지의 제왕 3편을 틀어주고 있었다. 아마도 호빗의 개봉에 맞춰서 틀어주는 것이리라. 그러고보니 오늘은 반지의 제왕과 호빗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호빗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얼마나 다른 것인지.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런 세계와 내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와의 괴리감이 아득하게 다가온다. 그러니까 이 글은 호빗이란 영화를 보고 온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호빗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그런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