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이런 날

시월의숲 2014. 4. 15. 21:53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가다가 발걸음을 돌려 도서관으로 향했다. 대기는 뿌였게 흐렸고 바람이 많이 불었으나 기온이 올라가 옅은 더위가 느껴졌다. 반팔옷을 입은 사람과 나시티를 입은 사람을 보았다. 아직은 4월인데, 하며 혼잣말을 하였으나 그게 전부였다. 늘 그렇듯, 도서관 일반 열람실에는 책을 읽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까만 모자와 까만 바람막이 점퍼를 입은 중년의 사내와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과 여학생 몇 명. 나는 먼저 신간코너에 가서 책을 쭉 훓어 보았다. 지난 번 왔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간을 들이는 시기가 그리 짧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신간코너를 지나 책장이 있는 순서대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딱히 읽고 싶은 책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급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눈에 띄는 책이 없었다. 사실 지금 읽고 있는 책도 아직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읽으려고 사놓은 책들이 집안 가득 쌓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서관에 왔고, 딱히 무언가를 읽고 싶은 마음도 없이 책들 사이를 서성거렸다. 마치 길을 잃은 아이처럼. 어쩌면 나는 산책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의미한 산책을. 바람이 많이 부는, 흐린 날씨의 거리가 아니라, 안전하고 단단한 책들의 숲에서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오늘 집에 가기 전에 아무런 목적도, 슬픔도 없이, 무엇에 이끌리듯이 도서관으로 향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 한참을 서성이다가 클래식 관련 서적을 하나 빌려서 도서관을 나왔다. 딱히 읽고 싶어서라기보다 그냥 빌리기 위해서 빌린 것 뿐이었다. 이런 날, 이런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나자신이 아닌듯한 이 느낌을.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를 조정하고 있는듯한 이 기분을.

 

어쩐지 오늘 나는 내가 아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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