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벚꽃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

시월의숲 2014. 4. 8. 20:30

벚꽃이 지고 있다. 이미 진 곳도 많겠지만, 아직 내가 사는 이곳엔 벚꽃이 다 지지 않았다. 며칠 전 비만 오지 않았어도 좀 더 오래 피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괜찮다. 아침저녁으로 벚나무 아래를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다는 건, 크나큰 행운이자 행복이다. 하지만 오늘 다녀온 구미에는 이미 벚꽃이 다 져버렸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벚꽃잎을 밟으며 걸을 수밖에 없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출장이었지만,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눈 부신 햇살, 무엇보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출장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상사는 흔쾌히 허락해 주었는데, 그건 크게 신경 써야 할 일들을 이미 다 해놓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출장을 다녀올 수 있었다. 이맘때쯤의 구미, 특히 금오산으로 가는 길에 쭉 심어져 있는 벚나무들은 봄을 만끽하게 해주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때 이른 기온상승으로 오늘 본 구미의 벚꽃은 이미 다 지고 없었다. 그래도 대기는 충분히 따사로웠고, 바람도 적당했다. 바람을 따라 날아온 벚꽃잎이 내 어깨와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절로 웃음이 나왔는데, 심지어 알 수 없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그저 허밍으로 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멜로디(라고 하기에도 뭣한)를 가진 음들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출장지에서 만난 동료들이 내게 이곳까지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시외버스와 택시를 이용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의 얼굴에는 놀란 빛이 어리더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냐고 말했다. 나는 그들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이곳까지 같이 올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느냐는 뜻이었다. 다들 두 명 혹은 서너 명씩 짝을 지어 카풀을 해서 오는데, 너는 왜 혼자 버스와 택시를 타고 왔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놀란 기색을 하는 것에 더 놀라며,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생각했다. 나는 차가 없으니 당연히 버스를 탄 것이고, 택시를 탄 것뿐인데. 반드시 누군가와 같이 와야만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혼자 버스를 기다리고, 버스에 타서는 창밖에 펼쳐진 햇살 어린 풍경을 바라보았으며, 눈을 감고 얕은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것은 그것대로 어떤 충일감을 느끼게 했고, 봄의 언저리를 서성이는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나는 사람들의 놀란 눈빛과 안타까워하는 표정에 의아함을 느끼며 눈부시게 내리쬐는 햇살을 바라보았다. 참새는 재잘거리며 땅에 내려앉았다가 날아가기를 반복했고, 멀리서 가끔 개 짖는 소리가 들렸으며,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바람이 나를 통과하여 멀리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출장을 왔다는 사실을 잊은 채 그냥 그 자리에 누워서 잠을 자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어쩐지 비현실적인 느낌의 날씨,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내가 벚꽃을 보면서 참 아름답다고 말할 때, 누군가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면 더 좋을 텐데, 너도 어서 빨리 애인을 만들어야지, 라고.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생각해주는 것 같아 고마웠지만, 어쩐지 이상했다. 왜 벚꽃을, 꼭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보아야 하는가? 물론, 그 사람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벚꽃을 보는 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어쩌면 혼자 보는 것보다 더 좋을수도 있다. 하지만 혼자인 사람에게 그런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고, 만약 그 말에 누군가 자신의 애인 없음을 비관하여 벚꽃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어리석은 일 또한 없을 것이다. 벚꽃이 지는 것을 안타까워할 수는 있어도, 벚꽃을 함께 볼 사람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이 봄을, 일생에 몇 번 보지 못할 이 봄을, 벚꽃을, 햇살을, 바람을 느끼지 못한다면 말이다. 자신을 비관과 자책, 후회의 늪 속에 밀어 넣는 것이 과연 자신을 위하는 길일까? 벚꽃을 감상하는데 누군가가 있고 없음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혼자여도 좋고, 둘이어도 좋다. 사랑하는 사람이어도 좋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면 또 어떤가? 벚꽃은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이 봄이 되면 피고, 또 질 것이다. 지금, 현재, 이 순간을 사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이 순간을 그냥 느끼는 것뿐이다.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벚꽃은 피었고, 나는 지금 그것을 보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 잔인한  (0) 2014.04.20
이런 날  (0) 2014.04.15
피아노  (0) 2014.04.05
햇살  (0) 2014.03.30
어떤 위로  (0) 2014.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