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봄을 살기, 혹은 견디기

시월의숲 2014. 4. 22. 21:50

며칠째 계속 목이 뻐근하고 몸이 무겁고 피곤하다. 어제까지는 참을만했는데, 오늘은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정도였다. 그래도 끝까지 일을 마쳤고, 집에 오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누워서 한참을 있었다. 잠이 왔으나, 이대로 잠이 들면 내일 아침에나 깰 것 같아서 억지로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하고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어쩐지 식욕도 일지 않았다. 일이 많은 시기가 아님에도(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긴장이 풀려서인지도 모른다) 겹겹이 쌓인 피로가 어깨를 짓누른다. 세월호의 침몰 사건으로 어떤 거대한 슬픔과 분노가 덮친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직접적인 요인은, 일 때문에 지난 주말에 쉬지 못한 탓이 큰 것 같다. 그리고 완연한 봄으로 바뀌는 이 시기의 날씨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적된 피로는 누적된 원인이 있기 마련이니까.

 

머리가 무겁고 목과 어깨가 아파서 책을 읽어도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몇 권의 책을 주문했고, 오늘 받았다. 책을 주문할 때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을 보면서 얕은 한숨을 쉬지만,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책이 눈에 띄면 사지 않고는 못 배긴다. 자주 이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짐이 되는 것들(책을 포함하여)을 사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아직 읽지 않은 책도 많고, 나중에 이사할 때의 번거로움으로 인해서, 지금은 좀 참고 나중에 사야지 하고 미뤄두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뒤따른다. 내가 지금 이 책을 사지 않으면 도대체 언제 살 수 있단 말인가? 나중이란 도대체 언제를 말하는 것인가? 내가 나를 위해서 이 정도도 하지 못하나, 하는 울분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 망설이다가 이내 책을 사고 만다.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읽지 않은 책들이 자꾸만 늘어난다. 살 때는 금방 읽을 것 같다가도, 막상 사고 나면 지금 읽고 있는 것을 다 읽은 후에 읽어야지 하면서 점차 미루게 되는 것이다. 책을 사는 속도를 읽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한다. 그것이 문제다. 빨리 읽는 것이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읽자고 나 자신을 다독이지만, 마음은 금세 조급해진다. 그래도 '언젠가'는 읽을 것이다. 그 언젠가가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젠 책을 살 때마다 하는 이런 푸념은 그만할 때도 되었건만. 나는 아직도 풋내기이고, 어리석다. 아직도 자라지 못했다. 나는 언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직 읽지 않은 책은 '언젠가' 읽을 것이라고 기약이라도 할 수 있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성숙해진다는 건 기약할 수가 없지 않은가?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니까. 나는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나는 두렵다.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치고 있으니 또 어깨가 아프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휴식이다. 충분한 잠과 충분한 영양섭취 그리고 마음이 맞는 사람과의 소소한 대화 같은 것. 오늘은 조금 일찍 잠을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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