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우울감에서 벗어나고 있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말하기가 망설여진다. 언제고 다시 게릴라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며칠 간의 내 상태와 지금의 상태를 비교한다면, 분명 나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주문처럼 중얼거렸던 '괜찮다'는 말이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효과가 있었을 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오늘 오후에 태양이 비추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태양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일을 하면서 혹은 커피를 마시면서 자주 창밖을 바라보았다. 모든 사물에 내려앉은 빛의 테두리를.
점심을 먹고 천천히 일터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정원에 피어있던 모란은 짙은 자주색의 꽃잎을 뚝뚝 떨구고 있었지만, 수국은 공기밥처럼 하얗고 둥글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쪼그려 앉아서 아직은 내 주먹만한 크기의 수국을 바라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하앟고 작은 나비떼가 한 무더기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모란과 수국을 지나 소나무와 목련, 벚나무와 모과나무를 지나면 정원 한 귀퉁이에 조그마한 밭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상추와 배추, 부추 등이 심겨져 있다. 나는 수국을 살펴 볼 때처럼 쪼그리고 앉아서 막 돋아나기 시작한 상추의 연둣빛 잎들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새순의 싱그러움이 내 손에 전해지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내가 손을 대기만 하면, 모든 사물의 정수(精髓)가 내게 전해지는 상상을. 그래서 내가 손을 대는 모든 것들과 서로 교감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나는 그것이 터무니없고 유치한 발상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러한 상상만으로도 내 가슴은 벅차오른다.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 벅차오르는 감정은 무엇일까? 지난 며칠 간 나를 괴롭혔던 그 감정의 정체는 다 무엇이었나?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없다면 누가 있어 나를,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단 말인가? 지는 모란을, 피는 수국을, 향기로운 등나무를 생각해야 한다. 막 피기 시작한 잎사귀의 푸르름에 내 눈과 마음을 씻어야 한다. 그리고 태양을 바라볼 것. 태양이 있음을 늘 생각할 것. 내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이다.
권여선의 <푸르른 틈새>라는 소설이 있다. 오래전에 읽었으므로 무슨 내용인지 잊어버렸다. 하지만 그 제목만이 유난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나는 푸르른 틈새, 라고 발음해 본다. 나는 몇 번이고 다시 말한다. 푸, 르, 른, 틈, 새. 내 마음 속 어딘가 푸르른 틈새가 생기는 것 같다. 나는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말한다. 푸른 틈 사이로 환한 빛이 쏟아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