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쓰디쓴 진실

시월의숲 2014. 5. 6. 23:39

길다면 긴 연휴였다. 오늘은 그 마지막 날. 연휴 동안 나는 제사를 지냈고, 동생 내외와 조카들, 고모와 사촌 동생을 만났다. 가족들과 만나면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이번엔 조금 마셨다.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평소보다 말을 많이 했고, 보이지 않는 벽을 실감했으며, 그래서 어떤 기대가 꺾이는 경험을 했다. 또한, 내가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옳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옳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것이 상대방의 의견과 충돌할 때는 잠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실망을 했던 건, 나와 의견이 같을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이 나와는 정반대의 의견을 말할 때였다. 누구보다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닐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 아니다. 이런 내 생각 자체가 편협한 것임을 나는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기대가 꺾임으로써 오는 실망감은 내게 얼마간 상처를 남겼다. 언젠가는 내가 그에게 하려고 했던 말들을 다시 벽장 속으로 밀어 넣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쓰디쓴 절망감이 연휴 내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언제나 내 편인 사람은 없다. 아니, 내 편이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거대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누구도 내 편이 될 수 없고, 나 또한 누구의 편도 될 수 없다. 그는 말했다.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나는 오로지 내 편일 뿐이다, 라고. 쓴 약을 삼키듯 나는 그 말을 삼켰다.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진실임을 나는 차갑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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