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고통

시월의숲 2014. 4. 28. 19:17

오늘 하루종일 비가 내리다, 오후 늦게 그쳤다. 조용하고 끈질긴 비였다. 흐린 하늘과 차가운 바람이 사물들의 색을 더욱 우중충하고 서글프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하루종일 우울한 기분에 시달렸다. 누군가 조금만 건드리면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이건 날씨 탓만은 아니었다. 간밤에 꾼 악몽 때문이기도 했다. 악몽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꿈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내용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다. 그것은 꿈이므로, 개연성있는 이야기일리가 없지 않은가. 불쑥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는 했는데, 그것이 특별히 슬프다거나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슬펐고, 불안했으며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그것은 마치 불안의 형상, 슬픔의 형상, 고통의 형상인 것 같았다. 응축된 감정의 덩어리 같았다. 참 이상하지, 나는 지금 그 장면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도 그것이 전해준 감정의 덩어리가 너무나도 생생해서 괴로웠다. 꿈이란 그런 것일까? 꿈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것인지, 고통 때문에 꿈을 꾼 것인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감정의 고통 때문에 새벽에 잠에서 깨었다. 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도저히 누워 있을 수가 없어서 일어나 방을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4시가 좀 넘은 시각이었다.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가 나를 옭아매고 거대한 아가리를 벌린채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나는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 번이고 심호흡을 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파도가 잔잔해지듯 감정의 소용돌이도 점차 잠잠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잦아드는 감정을 느끼며 나는 나에게 말했다. 괜찮아, 난 괜찮아. 나 자신을 지켜. 불안과 고통의 거대한 파도에 삼켜지지 마. 너는 혼자가 아니야. 나는 울고 싶었지만 울지 않았다. 다만 이를 악물었다. 나는 삼켜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삼켜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괜찮을 것이다. 주문처럼 그렇게 나는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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