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지금 이 순간 당신과 내 앞에 피어있는 저 붉은,

시월의숲 2014. 5. 20. 22:51

포항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비가 온다고 했던가? 일기 예보를 확인하지 않는 나는 오늘 날씨를 예측할 수 없었다. 사택을 나올 때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보았지만,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국도를 타고 갔는데,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농촌의 풍경이 펼쳐졌다. 아카시아꽃이 한창 피고 있었지만 대체로 지고 있었다.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는 장미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장미 덩굴이 도로변 곳곳에 있었고, 붉고 탐스러운 꽃의 무리가 지금이 오월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사택을 나올 때, 출입구 옆 울타리에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것이 생각났다. 나는 삼 년째 그 장미를 봐 왔지만, 볼 때마다 탄성이 나왔다. 사택 앞에서 만난, 출장을 같이 가기로 한 지인에게 무심코 '장미가 참 흐드러지게 피었네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저 장미를 올해 처음 보는 건 아니잖아요?'라며 질문인지 대답인지 모를 말을 했다. 나는 '몇 년째 보았지만 볼 때마다 참 좋아서요', 라고 말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말을 조금 덧붙여도 좋았으리라.

 

 '제 작년의 장미가 작년의 장미와 같지 않고, 작년의 장미가 올해의 장미와 같지 않은데, 어찌 같은 장미라고 할 수 있나요? 내가 감탄 한 것은 제 작년의 장미도 아니고 작년의 장미도 아닌, 바로 올해의 장미거든요. 지금 이 순간 당신과 내 앞에 피어있는 저 붉은 장미 말이에요!'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덕  (0) 2014.06.08
나는 기꺼이 미개인이 될 것이다  (0) 2014.05.24
거짓된 날들  (0) 2014.05.15
갈증  (0) 2014.05.11
쓰디쓴 진실  (0) 2014.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