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나는 기꺼이 미개인이 될 것이다

시월의숲 2014. 5. 24. 14:09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사랑에서 획득한, 혹은 자신의 사랑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세뇌당한 무소불위의 권력 때문에 두리번거리지 않고 질주하고,(왜냐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은 두려움을 모르니까.) 무모함 속으로 빠져들고, 무모함 속으로 빠져들면서도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왜냐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은 반추와 성찰을 모르니까.) 뒤늦게 의식하고도 멈추지 못한다.(왜냐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은 패배를 모르니까.)(113~114쪽, 이승우, 『지상의 노래』, 민음사, 2012.)

 

 

 

*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를 읽다가 문득 저 구절에서 눈이 크게 떠졌다. 지금의 상황과 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면이 있는 것 같아서였다. 그러니까 두려움을 모르고, 반추와 성찰을 모르고, 패배를 모르는, 혹은 알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 말이다. 작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거기서 획득한 권력에 대해서 말한다. 그것은 두려움을 모르고, 반추와 성찰을 모르고, 패배를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인가? 사랑이 정말 그러한가?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은 '사랑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세뇌당한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라 진실하고 성숙한 사랑이어야 하지 않을까? 저 구절만 보면 사랑과 권력은 동의어다. 사랑으로부터 권력을 부여받았고, 부여받은 권력으로부터 사랑을 만들어낸다.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러므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봐야 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한 사랑인지.

 

흔히 우리는 '사랑으로부터 비롯되었지만 결코 사랑이 될 수 없는 권력'을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혹은 구분조차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개인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런 사람들이 고위공직을 차지하고, 수재라는 칭호도 모자라 교육감을 하려하고, 목사가 되어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전파한다. 그보다 끔찍한 재난이 또 있을까? 원주민들을 미개하다 생각하고 계몽이라는 미명하에 탄압하고 힘으로 점령한 역사가 그리 멀지 않다. 그들은 결국 독재자 혹은 살인자에 지나지 않았다. 비약적이긴 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그러한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 활개를 친다. 국민들이 미개하다면 미개한 국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나님이 희생자들의 고통에 감응하여 그들을 감싸주기 보다는 오히려 권력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개하다고 호통을 치는 존재였던가? 그것이 정치가의 입에서,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들에게 사랑은 곧 권력이 된다. 자신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리곤 결국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들을 추종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아니, 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할지 모른다. 세상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이 늘 다수를 이루었으므로.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사랑이란 얼마나 이기적이고 편파적이며 폭력적인가! 사랑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세뇌당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추종하는 자들의 맹목성이란! 사랑은 충분히 정치적일 수 있다. 사랑의 속성이 그렇다 치고 다시 말해보자. 그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사랑이라고 믿고 싶은 자의 착각이 아닐까? 이 시대의 사랑이 그러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거대하고 치밀하게 짜여진 착각 속에서 살고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병들어 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오기와 자존심으로 무장한 채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자는 무지하고 폭력적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공감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그런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오로지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하며, 권력과 권위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지만 결코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사람은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정치가 혹은 리더라면 권력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사랑이란 말이 간지럽다면, 사람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다음에 나오는 것이 바로 권력이요 권위이다. 권력과 권위는 자신이 노력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그 자리에 오르면 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만들어서 그에게 잠시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원래 자신의 것이었다는듯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그것은 그들을 믿지 않는 자들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충성하는 자들에게조차 돌이킬 수없는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하면 그래도 되는가? 원래 다 그런거라고 말해도 되는 것인가? 그것을 진정 사랑이라고 말 할 수 있는가? 무엇에의, 무엇을 위한 사랑인가? 사랑이란 말로 위장된 권력 혹은 다른 무엇은 아닌가? 세치 혀나 거짓 눈물에 현혹되지 말고, 본질이 무엇인지 잘 들여다 봐야 한다. 그들은 희생자들을 미개하다 말했다. 미개하다는 말을 입밖으로 내뱉지 않은 이들이라도, 그들의 의견에 동참하는 이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미개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힘들지만, 내 혈육의 목숨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고만 있는 것에 대한 울분이 미개라면,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정당한 주장이 미개라면, 합리적인 추론에 따른 의문의 제기가 미개라면,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 입닥치고 있지 않고 큰소리를 낸 것이 미개라면, 나는 기꺼이 미개인이 될 것이고, 내가 미개인임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떨림  (0) 2014.06.10
영덕  (0) 2014.06.08
지금 이 순간 당신과 내 앞에 피어있는 저 붉은,  (0) 2014.05.20
거짓된 날들  (0) 2014.05.15
갈증  (0) 2014.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