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떨림

시월의숲 2014. 6. 10. 22:56

 

나는 약간의 긴장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공연장으로 오는 내내 조금씩 긴장이 되었는데, 이건 내가 공연장에 올 때마다 직면하는 감정이었다. 연주자도 아닌 내가 도대체 왜 긴장을 하는지 나로서도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더우면 땀이 나고 맛있는 것을 보면 침이 고이는 것과 같이 내겐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공연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도 모르고, 소공연장이라는 특성상 연주자와 관객과의 거리가 가깝다는데서 오는 감정인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나는 공연을 보러 가기 전부터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해서 공연을 보러가는 도중에 점차 긴장감이 증폭되다가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에 긴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 떨림이 때론 세련되지 못하고 바보스럽다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러한 긴장감이 없다면 어떤 공연을 보든 무미건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거창하게 말해서 아직까지 내가 이런 떨림을 가지고 있다는 건, 살아있음의 증거처럼 생각되기도 하고, 아직도 내 마음이 무언가로 인해 순수한 감동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공연이 시작되기 전 나를 지배하고 있는 이 떨림에 온 몸과 마음을 내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공연은 내 기대와는 달리 충분한 감흥을 주지 않을 때도 있고, 전혀 다른 종류의 감흥을 안겨주어 깜짝 놀랄 때도 있으며, 예상했던대로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기도 한다. 나는 대부분의 공연에서 좋은 점만을 보려고 하고, 내가 걸어 갈 수 있는 곳에서 열리는 공연이라면 무조건 환영하고 보기 때문에, 내가 보는 공연에 대한 점수가 후한 편이다. 그건 내가 특히 클래식 공연에 대해 전문적이고 독창적이며 날카로운 비평을 할 수 있는 식견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클래식 공연을 직접 본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아직도 놀랍고 흥분되는 일이고, 이것이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크다. 오늘 본 '성승한의 씨네마 콘서트 - 행복'은 그래서 공연의 내용을 떠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첼로 연주라고 해서 몇 달 전부터 벼르고 별러서 간 공연이었는데, 공연은 내 기대와는 달리 첼로가 아니라 시네마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연주자(라기 보다는 해설자 혹은 선생님에 더 가까웠지만)가 직접 편집한 유명한 영화들의 주요 장면들과 생각을 하게 하게 만드는 질문들, 첼로를 통해 듣는 영화의 주요 테마곡들은 그 자체로도 이미 감성적이었고 아름다웠다. 그러니까 이건 클래식 공연이 아니라 시네마 콘서트였던 것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 <인생은 아름다워>, <러브 레터>, <시네마천국>이라니! 레파토리가 너무 대중적이어서 좀 식상하다 싶기도 했지만, 이미 그 영화들 자체가 클래식의 반열에 들어간 것들이고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영화들도 있으니 그리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영화와 음악이 유명하다고 해서 연주가 새롭지 않은 것은 아니니 말이다. 첼로와 피아노로 연주된 <러브 레터>의 테마곡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그 영화를 중학교 때 내가 살고 있던 고장의 문화회관에서 보았다. 아직까지도 음악의 멜로디와 줄거리가 생각나는 것을 보면 무척 인상깊게 보았던 것 같다. 인상적인 음악이나 혹은 잊히지 않는 장면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것이 누군가의 머리 혹은 가슴속으로 파고들어가 깊은 인상을 남긴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감정을 어루만지지고 급기야는 우리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무척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그 놀라움과 신기함이 때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실까지도. 공연이 끝나갈 무렵 연주자가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그건 서로 사랑하라는 말이라고. 그 말로 인해 내가 사랑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그 공연이 사랑스러웠다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으리라. 공연이 시작되기 전 최고조에 이르렀던 나만의 떨림이 공연이 진행되면서 차차 가라앉고 공연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소박한 행복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공연으로 인해 생긴 알 수 없는 긴장은 달리 말해 행복에의 예감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