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내부의 안부

시월의숲 2014. 6. 16. 19:57

너는 자주 내게 부럽다고 말했지. 내가 하는 모든 것들, 혼자 영화를 보고, 공연을 관람하고, 책을 쌓아놓고 읽거나, 좋아하는 음악가의 CD를 사서 듣고, 영어동아리에 가입해서 활동하거나, 우쿨렐레를 배우는 것, 그러니까 나 혼자 하는 모든 행위들이 자유롭고 삶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고. 너는 늘 죽지 못해 산다고 말했어. 하지만 내가 보기엔 네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다워 보이고, 삶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너는 모를거야. 언젠가 나는 자주 그런 말을 하는 네게, 행복이란 상대적인 것일뿐, 누가 더 행복하거나 덜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라고 말했지. 하지만 너는 내가 하는 말을 깊이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 단지 어설픈 위로의 말처럼 들렸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는 알겠니. 내가 하는 모든 것들, 나 혼자서 하는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어떤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 적는 이 글도 그러한 몸부림의 하나라는 사실을.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외로움과 직면해야 하는지, 나약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나약함과 마주해야 하는지, 고독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고독은 인간 본연의 것으로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개인 고유의 영역이라는 주문을 수없이 외워야 하는지 너는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너는 밝은 대지 위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연스럽게 인정을 받는 존재이고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너는 영원히 알 수 없겠지. 그렇기 때문에 이 편지 또한 영원히 붙이지 못할거야. 나는 너의 외로움과 나약함, 고독을 알지 못하고 너역시 나의 외로움과 나약함, 고독을 알 수 없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불행하고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스치고 지나가. 너또한 나에게 그런 존재이고, 나또한 너에겐 그런 존재일뿐. 이건 무척이나 슬픈 일이겠지만 그렇게 태어난 존재에게 그건 감수해야만 하는 형벌 같은 것이겠지. 나는 죄를 짓지도 않은채 죄인이 되었고, 그로 인해 보이지 않는 형벌을 받고 있어. 하지만 이건 아무도 모르는 형벌이자 나 스스로 선택한 형벌이기도 해. 누군가 이런 나를 보며 슬프다고 말했어. 나는 그때 슬픔이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지. 슬픔은 때론 더 큰 슬픔과 아픔을 불러올 수 있다는 걸 알았거든. 그는 나에게 슬프다고 말했지만, 그건 나를 위한 슬픔이 아니었어. 나를 위한 슬픔이었다면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었지.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내 어깨에 손을 올려주는 것 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텐데, 그는 그렇지 않았어. 그건 누굴 위한 슬픔이었을까? 가끔 그때의 일을 회상할 때면 이상하게 가슴이 아파와. 슬픔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타인의 슬픔과 아픔에 진정 손을 내밀 수 있는 존재인지 의문이 들기 때문일까. 너는 나를 부러워했지만, 나는 네가 부러워. 슬픔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테니까. 너에겐 지금 그런 존재가 곁에 있으니까. 그렇지 않니?

 

김소연의 '내부의 안부'라는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어. 이 싯구로 끝인사를 대신하려고 해. 늘 행복하길. 이건 너보다는 내게 하는 말이겠지만.

 

'엽서를 쓰고 있어요 너에게 쓰려다 나에게……유서를 쓰려다 연서를 쓰게 된 사람에 대해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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