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다른 가능성

시월의숲 2014. 6. 24. 22:24

왜 사람들은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일까? 사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없고, 모든 일에는 한 가지 혹은 몇 가지의 다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언제나 불만이었던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의 어느 시기가 오면 반드시 정해진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해버린다는데 있다. 그게 인간이야, 혹은 그래야 보통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지, 따위의 말들을 지껄이면서. 남들이 다 그러하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는 말은 참으로 맥이 빠지는 대답이다. 또한 남들이 다들 그렇게 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근거없는 믿음을 가진 자들 또한 그러하다. 그런 자들과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는다. 대화의 가능성이 차단된다. 다른 가능성? 그들은 코웃음을 치며 다른 가능성이란 결국 쓸쓸하게 혼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 이외는 없다고 말할 것이다. 언젠가는 결혼을 할 것이고, 언젠가는 아이를 가질 것이며, 언젠가는 차를 살 것이며, 언젠가는 집을 살 것이고, 언젠가는... 그들의 미래는 거칠 것이 없고, 모든 것이 당연한듯 펼쳐져 있어서 삶의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한다고 해도 놀랄만큼 몸서리치며 마치 악몽에서 필사적으로 빠져나오듯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방금 내가 잠깐 미쳤거나 잠시 몽상에 사로잡혀서 되지도 않은 상상을 하고 있었다고 불쾌해 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들은 그들이 '정해놓은 시기'에 '정해놓은 일'을 한 사람을 동경하며 그들처럼 되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한다. 더 우스운 일은 조금만 타인과 다른 삶 혹은 다른 생각을 할라치면 그 즉시 손가락질을 당하고, 이상한 사람 혹은 불온하다는 딱지를 붙여 그를 매장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쭈뼛거리며, 삶의 다른 가능성 혹은 삶의 다양성에 대해서 말을 하려고 하지만 그들의 압도적이고 이기적인 말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자신이 하는 말에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이건 그 자체로 이미 폭력적이고, 그 폭력성을 자신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잔인한 폭력이 된다. 이언 매큐언의 '속죄'에 나오는 브리오니처럼!).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삶의 메뉴얼이 있고, 그것을 진리로 믿으며, 당연히 메뉴얼대로 하지 않는 사람을 공공연하게 배척한다. 그들이 삶의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그들의 사고 '밖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가진 메뉴얼이란 한갓 지금 현재 자신을 둘러싼 지극히 개인적인 현실, 그러니까 우물 안 개구리의 현실, 임시적으로 만들어진 가변적인 현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한답시고 자신이 가진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삶이란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되며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그건 '너'의 생각일 뿐이다. 삶의 방식과 태도 혹은 선택에 있어서 진리란 각자의 진리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그들의 사고에서 나올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일 수 있음을 인정하니까.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있다. 만약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자신들의 생각에 맞추어 조정하려 한다면 그보다 절망적이고 두려운 것은 없으리라. 나는 지금 두렵고 절망적이다. 그런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하루종일 시달리다보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근원적인 회의가 든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편협하고, 배타적이며, 이기적이고, 소통이 불가능한 존재일 뿐인가? 그런 생각이 들때면 걷잡을 수없는 슬픔이 밀려와 나는 때때로 걸을 수조차 없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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