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제안들1, 프란츠 카프카, 《꿈》, 워크룸, 2014.

시월의숲 2014. 6. 28. 18:28

카프카는 비실재적인 것을 실재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고, 그것은 우리가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강력하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암시한다. 언젠가 그는 일기에서 자신의 글쓰기가 "꿈과 같은 내면의 삶"을 묘사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 말은 그가 한 편의 작품을 쓰기 전에 우선 외부 세계의 모든 영향을 하나하나 주의 깊게 차단하려 했다는 사실과 부합한다. 그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홀로됨"이야말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무조건의 전제라고 여러 번이나 밝혔다. 그래서 대개 깊은 밤에 자신의 방에 틀어박힌 채, 혹은 심지어 오직 그 목적을 위해 임대한 집에 책상을 가져다놓고 글을 썼던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어떤 창작의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특정한 정신 상태로 몰아가려는 구체적인 시도였다. 많은 점에서 꿈꾸는 자의 상태와 부합하는 정신 상태로, 그의 일기에는 이런 정신 상태에 대해 묘사한 부분이 있다. 그의 꿈이 갖는 "힘"은 심지어 "잠이 들기도 전부터 그의 깨어 있는 상태로 침입해 들어오"며 그는 이러한 중간의 영역에 있을 때 자신의 작가적 능력을 온전하게 인식하게 된다고. "나는 내 존재의 밑바닥까지 최대한 이완되고,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 안에서 꺼내 위로 들어 올릴 수 있다."(18~19쪽, 서문)

 

 

*

 

 

카프카가 꿈을 재료로 하여 작품을 쓴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실제로 꾼 꿈을 그대로 설명하고 재현해놓은 글, 즉 꿈의 기록이 곧 그의 작품이라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그의 작품은 예술적 꿈에 가깝다. 예술적 꿈은 "가수면 상태의 환상"과 거기서 태어난 아이디어를 문학으로 도입하는 창작 방식이다. 하지만 그의 꿈은 철저하게 리얼리즘적 방식으로 기술된다. 그리하여 모든 텍스트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이 암시적으로 포함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20쪽, 서문)

 

 

*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해 냈습니다. 더 이상 당신의 눈동자 속에서 실망을 읽지 않았습니다. 나는 꿈의 경악을(사람이 편한 척 행동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어떤 장소이기도 합니다)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경악은 깨어 있는 현실에서도 여전히 내 안에 있습니다. 나는 어둠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나는 태양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30~31쪽)

 

 

*

 

 

그저께 밤에 나는 두 번째로 당신의 꿈을 꾸었습니다. 우편 배달부가 당신의 등기 편지 두 통을 가져왔는데, 그는 증기기관의 피스톤이 착착 움직이듯 현란하고도 정확하게 팔을 놀려서, 내 양손에 편지를 각각 한 통씩 올려 주었습니다. 신이여, 그것은 마법의 편지였습니다. 아무리 많은 편지지를 봉투에서 꺼내도, 봉투는 결코 비는 법이 없었으니까요. 나는 층계 가운데에 서서 다 읽은 편지지를 충계 바닥에 던져야만 했는데, 그게 나쁜 행동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편지지를 봉투에서 더 꺼내야겠다는 생각에만 몰두했습니다. 마침내 층계는 위쪽과 아래쪽 모두 편지지로 산을 이루며 뒤덮여 버렸습니다. 느슨하게 쌓인 종이 더미가 경쾌하고도 요란하게 바스락거렸습니다.(56쪽)

 

 

*

 

 

지워지지 않는 꿈. 그녀는 시골길을 가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단지 그녀가 지나가면서 가볍게 흔들리는 여운을 느꼈을 뿐이다. 베일을 바람에 날리며, 그녀는 걸음을 옮겼다. 나는 들판 가장자리에 앉아 작은 시냇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마을을 지나쳐 갔다. 문 앞에는 아이들이 서 있었다. 아이들은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지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했다.(1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