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를 해서 얻은 가치 있는 결과물보다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은 그들의 필사 행위 자체이다. 그들의 필사 행위는 가치 있는 결과물 때문에, 가치 있는 결과물들을 얻어 낸 행위이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 자체가 가치 있는 어떤 결과물보다 가치 있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것이다.(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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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동기에 의존하지만 그러나 동기는 결과를 제어하지 못한다. 엄격하게 말하면 사실 그것들은 작업자의 내면에 서로 엉켜 있어서 따로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한 경우가 더 많다. 작업자 자신도 내면에 있는 동기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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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문제 될 것이 없는 사소한 현상들이 태풍이 일어났기 때문에 태풍을 유발한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결과가 무작위로 원인들을 소환하는 이 시스템은 심리학적 요인에 의해 지원받고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인간 심리의 무규칙성과 돌발성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을 세상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과 인과적으로 관련지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낸다.(40~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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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사랑에서 획득한, 혹은 자신의 사랑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세뇌당한 무소불위의 권력 때문에 두리번거리지 않고 질주하고,(왜냐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은 두려움을 모르니까.) 무모함 속으로 빠져들고, 무모함 속으로 빠져들면서도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왜냐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은 반추와 성찰을 모르니까.) 뒤늦게 의식하고도 멈추지 못한다.(왜냐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은 패배를 모르니까.)(113~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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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사람이 당하는 고통은 불의한 사람이 누리는 행복만큼 이해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인간은 질문한다. 이성이 대답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질문은 이성 너머, 신에게로 향한다. 신의 대답은 그러나 언제나 흡족하지 않다. 그 대답을 듣는 인간이 이성 너머를 사유할 수 없기 때문이고, 그 대답이 이성 너머를 사유할 수 없는 인간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다.(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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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들은 왜 규칙도 예고도 없이 제멋대로 출몰하는 것일까. 사라졌다가 돌아오고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기억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대비할 수 없고, 대비할 수 없기 때문에 이길 수 없다. 나타나면 감당해야 하고, 사라질 때까지 내버려 두어야 한다. 물고 늘어질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기억이 지쳐 나가떨어지지는 않는다. 지쳐 나가떨어지는 쪽은 기억이 아니라 그것을 물고 늘어지느라 에너지를 소비하는 우리의 육체다.(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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