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토마스 베른하르트, 《몰락하는 자》, 문학동네, 2011.

시월의숲 2014. 9. 27. 22:35

베르트하이머는 글렌의 죽음을 감당하지 못했다. 자기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 천재보다 더 오래 살게 됐다는 것을 지난 한 해 동안 얼마나 비통스러워했는지 난 안다. 글렌이 죽었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고 이틀 뒤에 글렌의 아버지가 아들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전보를 보내왔다. 피아노 앞에 앉기만 하면 웅크리던 글렌의 모습은 꼭 짐승 같았지, 난 생각했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보면 꼽추 같았고, 그보다 더 자세히 보면 실제 모습대로 예리하고 아름다운 인간으로 보였다.(24~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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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죽으면 우리는 그 친구가 잘 쓰던 표현이나 발언으로 그를 못 박고 친구가 즐겨 사용했던 무기로 그 친구를 죽인다. 살아 있을 때 우리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한테) 건넸던 말 속에서 계속 살아남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친구가 한 말로 그 친구를 죽일 수도 있다.(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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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트하이머는 불행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끌렸는데, 그 사람들에게 끌렸다기보다는 그들의 불행에 이끌렸던 셈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항상 불행이 존재하기 마련이지, 난 생각했다. 베르트하이머는 불행에 중독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한테 중독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바로 불행이야, 그 반대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바보야, 라고 베르트하이머가 곧잘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건 불행한 일이야, 살아 있는 동안 불행은 지속되고 죽음만이 그걸 그치게 할 수 있어, 라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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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오해 속에서 헤매고,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런 오해에서 못 벗어나잖아,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어, 하지만 이런 건 누구나 하는 관찰이지, 그의 말을 생각했다. 누구나 쉴 새 없이 말을 하면서 오해를 사잖아, 최소한 이런 점에서만큼은 모두가 서로를 이해한다고 할 수 있지, 라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를 오해의 세상에 낳은 것도 오해이며, 세상이 오해로 짜여 있어야만 우리는 오해의 세상을 견딜 수 있고, 다시 세상을 떠나는 것도 큰 오해 때문이지, 죽음보다 더 큰 오해는 없으니까, 라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69~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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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은 자연은 내게 적대적이야, 라고 말했다. 똑같은 말을 했던 나와 관점이 같았지, 나는 생각했다. 우리 인생의 특징은 끊임없이 자연에 반발한다는 점이야, 라고 글렌은 말했다. 자연이 우리보다 힘이 세기에 처음에는 자연에 반발하다가 나중에는 포기하게 되지, 우리는 주제도 모르고 우리 자신을 인공물로 만들어버렸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야, 인공물이지, 피아노 연주자는 인공물이야, 혐오스러운 인공물이지, 라고 그는 덧붙였다. 우리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줄곧 도망치려 하지만 자연의 순리 때문에 그렇게 못 하잖아, 그래서 도중에 항복하는 거야, 라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사실 피아노이길 원해, 인간이 아니라 피아노이길 원하지, 평생에 걸쳐 인간이 아닌 피아노이길 원해, 인간으로부터 도망쳐서 오직 피아노이길 원하지만 그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소망이란 걸 인정하지 못하는 거야, 라고 그는 말했다. 이상적인 피아노 연주자는 (글렌은 절대로 피아니스트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피아노이기를 원하는 자야, 나조차도 매일 잠에서 깨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 스타인웨이를 연주하는 인간이 아닌 스타인웨이가 되고 싶다고, 오로지 스타인웨이를 연주하는 인간이 아닌 스타인웨이가 되고 싶다고, 오로지 스타인웨이가 되고 싶다고, 간혹 그 이상형에 근접할 때가 있지, 거기에 너무 근접해서 벌써 미쳐버리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고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광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그렇지, 하고 그는 말했다.(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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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 친구는 자신의 실패와 사랑에 빠졌어, 아니 실패에 홀딱 빠져버렸지, 실패하기를 끝까지 고집했어, 그는 자기가 불행하다는 사실 때문에 불행했지만, 자고 일어났는데 불행이 사라졌거나 찰나의 순간에 불행을 빼앗겼더라면 더욱더 불행해졌을 거야, 그것만 보더라도 그는 진정으로 불행했던 게 아니야, 불행을 통해서 불행과 함께 행복했다는 증거지, 불행 속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들도 많잖아, 그렇다면 베르트하이머도 자기 불행을 항상 의식했고 자기 불행을 만끽할 수 있었으므로 사실은 행복했을지도 몰라, 라고 난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유가 무엇이든 자신의 불행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서 치처스까지 가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터무니없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불행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몰라, 왜냐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가 그들의 불행을 빼앗았을 때 비로소 불행해지기 때문이야, 베르트하이머는 자기 불행을 잃을까봐 두려웠고 그가 자살했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야, 교묘한 방법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며, 아무도 그가 지킬 거라고 믿지 않았던 약속을 뒤늦게나마 지켰던 거야, 이 세상은 베르트하이머를 비롯한 수많은 그뇌하는 영혼들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했지만,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늘 매몰찼던 베르트하이머는 행복을 뿌리치고 세상을 떠난거야, 그건 그가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 불행에 치명적으로 익숙해졌기 때문이야, 난 생각했다.(101~1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