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토마스 베른하르트,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필로소픽, 2014.

시월의숲 2014. 6. 11. 20:48

파울이 수년 동안 그 자신의 광기에 휩싸인 채 죽음을 향해 내달렸듯이, 나 역시 수년 동안 나 자신의 광기에 휩싸인 채 어느 정도는 스스로  죽음을 향해 내달린 것이 맞다. 그러다 파울의 경우는 매번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것으로 죽음의 질주가 일단 중단되곤 했으며, 내 경우는 매번 폐병원에 와서야 한바탕 광기가 중단되곤 했다. 파울이 매번 자신과 주변 세계에 대항해 최대치의 반항을 벌이다가 정신병원에 실려와야 했듯이, 나 역시 매번 나 자신과 주변 세계에 대항해 최대치의 반항을 벌이다가 폐병원으로 실려 왔다. 파울이 자주, 그리고 당연히도 점점 더 짧은 간격으로, 자기 자신과 세계를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처럼, 나 역시 종종 자신과 세계를 견딜 수가 없는데 그 간격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었다.(30~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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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파울은, 그의 재산을 그랬듯이 사고력마저도 끊임없이 창밖으로 집어던져 버리곤 했다. 그러나 창밖으로 던져진 재산이 아주 빠른 속도로 바닥나버린 것에 반해 그의 사고력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았다. 그는 사고력을 쉴 새 없이 창밖으로 내던졌다. 그러면 사고력은 (동시에) 쉴 새 없이 증폭되었다. 그가 사고력을 (머릿속의) 창밖으로 던지면 던질수록, 사고력은 더더욱 증가했다. 자꾸만 쉴 새 없이 정신적 능력을 (그들 머릿속의) 창밖으로 던져 버리는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그들 머릿속의) 창밖으로 정신적 능력을 던져 버린 것과 마찬가지의 속도로 정신적 능력이 증가하고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처음에는 미쳤다가 나중에는 광증환자로 발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들이 점점 더 많은 정신적 능력을 (그들 머릿속의) 창밖으로 집어던지는 동시에 그것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점점 더 늘어나고, 따라서 당연히 점점 더 위협적이 되고, 종국에 가면 그들이 정신적 능력을 (그들의 머리에서) 밖으로 집어던지는 속도가 머릿속 정신적 능력의 증가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게 되어,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증가하는 정신적 능력이 꾸역꾸역 쌓이다 못해 마침내 머리가 터져 버리게 된다. 그렇게 해서 파울의 머리도 터져 버린 것이다. 정신적 능력을 (그의 머리에서) 밖으로 집어던지는 속도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34~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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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처럼 반드시 자신의 철학을 글로 써서 세상에 발표를 해야만 철학자라고 불리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철학적인 사색을 하나도 발표하지 않았다 해도, 즉 그것을 글로 한 줄로 쓰지 않았고 따라서 단 한 권의 책도 출간하지 않았다 해도 그 역시 철학자인 것이다. 글을 발표한다는 것은 발표하지 않았으면 잘 드러나지 않고 이목도 끌지 못할 것을 분명하게 부각시켜 세상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절차일 뿐이다. 루트비히는 (자신의 철학을) 출간한 자이고, 파울은 (자신의 철학을) 출간하지 않은 자이다. 루트비히가 종국에는 (자신의 철학을) 출간할 사람으로 태어났듯이 파울은 (자신의 철학을) 출간하지 않을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도두는 자신의 시대뿐 아니라 모든 시대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위대하면서도 언제나 선동적이며 고집스럽고 전복적인 사상가였다.(89~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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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이렇다. 나는 그냥 자동차에 앉은 채로 한 장소를 떠나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데, 행복한 순간은 오직 자동차에 앉아 있을때뿐이다. 나는 차를 타고 이동할 때만 행복하고, 도착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이 된다. 어디에 도착하든지 상관없이, 도착하는 순간 나는 불행하다. 나는 세상의 그 어떤 장소에서도 견디지 못하고, 오직 떠나 온 장소와 도달할 장소 사이에 있을 때만이 행복한 인간에 속한다.(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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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나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다. 나는 거리의 반대편에 서서 그를 지켜보기만 했다. 이미 오래 전에 세상과 결별했으나 여전히 세상을 떠돌도록 강요받은 인간을 바라보듯이. 이미 더 이상 세상에 속하지는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세상 속에 있어야만 하는 인간을 바라보듯이.(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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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친구 파울을 알게 된 것은 그가 명백하게 죽어 가기 시작한 시점이었고, 내 메모가 지금 말해 주듯이 지난 십이 년간 나는 그의 죽음의 과정을 추적해 온 것이다. 그러면서 그의 죽음을 이용했다. 그의 죽음을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이용해 먹었다. 사실 나는 그의 죽음을 십이 년 동안 지켜본 증인에 지나지 않으며, 십이 년 동안 죽어가는 친구로부터 나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에너지를 빨아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내 삶이, 정확히는 내 존재가 조금이라도 더 수월하게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혹은 최소한 내가 장기간 생존하기 위해서는 친구가 죽어야 한다는 그런 결론에 이르는 것도 아주 앞뒤가 안 맞는 생각만은 아니었다.(138~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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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땅에 묻히는 날 이백 명의 친구들이 모일 거야. 그날 자네가 내 무덤에서 연설을 해 주었으면 해, 하고 파울은 나에게 말했었다. 하지만 내가 듣기로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합해서 여덟 명 혹은 아홉 명이 전부였다고 한다.(140~1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