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꿈 없는 잠

시월의숲 2014. 7. 10. 21:17

폭도처럼, 더위가 몰려왔다. 며칠 전까지만해도 밤에는 꽤 선선한 기운 때문에 이불을 끌어당겨야 했는데, 이제는 열대야 때문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열어놓은 창문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제 밤엔 더위 때문에 잠에서 깨어 선풍기를 틀었다. 개인적으로는 업무 환경이 바뀌고 한참 정신이 없을 때 본격적인 더위가 찾아와서 몸과 마음이 더 지치는 것 같다. 안그래도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더위마저 왔으니, 혼란이 더욱 가중될밖에. 내겐 더위란, 집중할 수 없는 상태, 의식 혹은 정신의 마비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새로운 업무와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니, 내 정신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아직 정리해야 할 것이 많고 새롭게 해야 할 일 또한 쌓여있다. 그래도 시간이, 조금씩 조금씩 무엇이든 익숙하게 만드는 것을 느낀다. 그렇지 않고 계속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 살아야 한다면 아마도 인간은 얼마 살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 것이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친구였던 파울 비트겐슈타인처럼 말이다. 지난 며칠 동안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오로지 잠, 깊고 깊은 잠에 대한 생각만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비례해서 실제로 잠은 길게 잘 수 없었다. 잠에 대한 갈망에도 불구하고, 생각할 수 없는 상태에 대한 반발이 더 컸던 모양이다. 나는 피곤한 상태에서 잠의 유혹을 뿌리치면서까지 일찍 잠들지 않았는데, 이는 또다시 그 다음 날 일어나야 하는 일에 대한 스트레스로 작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나는 잠을 더욱 깊히 갈망하게 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잠으로의 도피였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잠들지 못하면서도 정신으로나마 잠으로 도피하고 싶은 심리. 그러니까 내게 잠 아닌 잠을 달라! 카프카처럼 꿈 때문에 괴롭지는 않았다. 꿈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 또한 아니었다. 나는 꿈 없는 잠이 중요했고, 필요했다. 내 이런 반발 심리는 지금처럼 무언가를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내 나름의 반항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놀랍게도 무언가를 읽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는지도 모르고. 누군가 말하리라. 언제부터 당신이 글을 쓰고 책을 읽었나요?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을 언제부터 그렇게 사랑하게 되었나요? 실제로 그렇게 많이 책을 읽지도, 변변찮은 시나 소설 따위를 쓰지도 못하면서 말이에요! 당신은 정말 읽고 쓰는 것을 사랑하나요?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요,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요? 그것을 당신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나요? 진정?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어쩌면 영원히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알 수 없는 상태, 혼란의 상태에 빠진다. 나는 읽고 쓰는 것을 사랑한다고 당당히 말하지 못한다. 나는 그것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꿈 없는 잠을 원한다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다만 그것을 사랑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진실이 있다면 아마도 그뿐이리라. 어서 빨리 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그래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것이 단순히 혼란스러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나는 계속 꿈 없는 잠을 갈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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