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시월의숲 2014. 7. 14. 00:33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어쩌면 이전부터 점차적으로 변화의 조짐이 있어왔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그러므로 당연히 변화의 속도는 순식간처럼 느껴진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컴퓨터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불과 몇 달 사이에 핸드폰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바뀌어간다. 사실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몇 년과 몇 달은 충분히 변화의 속도를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들은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하루 아침에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바뀌고, 하루 아침에 차가 생기고, 하루 아침에 생소한 일을 해야만 한다. 더위가 급격하게 찾아온 것처럼 나는 무방비의 상태로 그것을 맞을 수밖에 없다. 나는 보기좋게 당해버린 것이다. 실제로 하루 아침은 아닐지라도(그렇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처한 상황의 변화 속도에 내가 따라가지 못한다. 나는 당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누구의, 무엇에의 당함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무자비한 폭력에 내몰린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나는 두렵기까지 하다.

 

그리고 서글픔.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마음 붙일 곳이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서글픔이 지금의 나를 지배하고 있다. 나는 친구를 만나도 서글펐고, 밥을 먹어도, 술을 마셔도, 산책을 해도 서글펐다. 익숙하던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서글픔의 장력 안으로 들어와 버려서, 서글픔이 아니고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버린 것이다. 그것은 슬픔과는 좀 다른 감정이다. 나는 슬프다기보다는 서글펐다. 나는 떠나야 하고(이미 떠났고), 새롭게 시작을 해야 한다(이미 시작했다). 옮겨 다니는 것을 예전에도 안 해본 것은 아니었으나,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불안의 그림자가 떠나지 않는다. 또다시 시간이라는 마약에 이 모든 것을 맡겨 두어야 하는 것일까? 그건 너무나 손쉽고도 무책임한 일이 아닌가? 언제까지 이런 감정에 시달려야 하는지 기약이 없으므로, 시간이 해결해주리라는 믿음 또한 지금은 믿을 수가 없다.

 

이럴 때는 기형도를 읽어야만 하는 것일까?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같은 문장들을 읊조리면서. , 나는 너를 내 두 눈으로 똑바로 쳐다볼 수 있을까. 형체도, 냄새도 없는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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