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걷는 동물

시월의숲 2014. 7. 5. 23:17

인간이 하루에 걸어갈 수 있는 곳은 한계가 있지만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한계가 없다. 인간의 걸음과 자동차의 이동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인간이 지닌 한계를 사랑하므로 당연히 인간의 걸음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걸어서 새롭게 당도한 도시를 만날 것이다. 차를 타고 어떤 도시를 간다는 건, 그냥 그곳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과 같다. 물론 걸어서 도시를 다니다 보면 얼마 가지 않아 지쳐서 결국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럴 땐 잠시 쉬면서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을 구경하면 된다. 그러니까 걸어서 다닐 수 있을만큼만 걸으면 되는 것이다. 다들 내게 차가 없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나는 그 이유를 생각해보지 않아서 남들이 그것을 물었을 때 좀 당황했던 것 같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단지 차를 사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사회 생활을 하면 다들 차가 있어야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에서 내 대답은 좀 이상하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차를 안타려는 것이 아니라 굳이 차를 타고 다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게 정확한 대답일 것이다. 나는 언제나 내 일터와 가까운 곳,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에 방을 얻었다. 출장이 있는 경우에는 대중교통과 택시를 이용했다. 어떻게 그렇게 불편하게 다닐 수가 있어요!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나는 놀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어떻게 그렇게 불편하지 않게 다닐 수가 있지요? 어쩌면 사람들은 단순히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차를 사는 건지도 모른다. 확실히 자가용이 있으면 시간을 활용하기가 좋을 것이다. 하지만 버스나 기차가 가진 매력도 분명 존재한다. 그건 차가 없는 자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누군가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그리고 나도 언젠가 내 차를 타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걸어서, 내가 당도한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을 볼 것이고, 그 도시에서 부는 바람과 햇살을 온 몸으로 맞을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내가 한 도시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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