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쩔 수 없는 것을 어쩔 수 없어 하기 위해

시월의숲 2014. 7. 25. 19:16

사람들은 모두 밝은 웃음을 짓지만, 나는 어쩐지 모든 것이 어색하기만 하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늘 그랬듯) 낯선 땅에 던져진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도 근무처를 몇 번 옮겨 다니긴 했지만, 이번에는 이상할 정도로 더 낯설고, 더 혼자인 것 같은 느낌에 서글픔까지 덮쳐서 나는 한동안 숨을 쉬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장소와 완전히 다른 일과 구조 때문에 적응을 하기가 쉽지 않다. 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친절하게도, ‘여기서도 잘했으니 어딜가든 잘 할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금방 적응할 거니까따위의 말을 해주었으나, 내겐 그 말이 와닿지가 않았다. 위로의 말보다는 걱정이 더 컸으므로.

 

나는 늘 혼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그래서 그것에 익숙해져있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과거에도 혼자였고 미래에도 여전히 혼자일거라는 사실이 바위처럼 부서지지 않을 것만 같고, 그래서 더없이 슬프게 다가온다. 나는 그것에 내성이 생겨서 왠만해서는 자극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궁지로 내 몬 급격한 상황의 변화로 인해 그럴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문제는 내가 혼자라는 생각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타인에 대한 그리움 또한 그에 비례해서 커진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힘이 들면 들수록 타인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니까. 타인의 힘, 타인의 미소, 타인의 위로, 타인의 시선, 타인의 관심, 타인의 사랑 등등. 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고, 위로를 받고 싶고, 그저 말 없는 시선 속에 편안함을 느끼고 싶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수동적인 인간인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하기 보다는 타인에게서 무언가를 받기를 원한다. 이건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가? 그동안 혼자서 많은 것을 해왔기 때문일까? 하지만 누구나 성인이 되면 그런 것들을 하지 않는가? 어려서부터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남들보다 일찍 했다는 억울함 때문에 일종의 보상 심리가 작용하는 것일까?

 

자동차만 해도 그렇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자동차를 몰고 출퇴근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자동차가 없이 정말 편안하게(남들과는 반대로) 생활해 왔으나, 자동차가 생기면서부터 나는 급격한 서글픔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었다. 내가 직접 자동차를 몰아야 한다는 부담감! 나는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는 것보다는 옆에 타는 것이 좋고, 옆에 타는 것보다 걷는 것이 더 좋다. 다른 사람들은 자동차를 갖지 못해 안달을 하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만약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차를 샀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자동차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다. 관심이 없으므로 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가능하다면 알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타야만 하는 상황이 나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삶이 어쩔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 속에서 내가 어쩔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매사에 수동적이고 느리지만, 체념은 능동적이고 빠르다(이런 말이 가능한가?). 이것이 내 유일한 장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어떻게든 적응을 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슬픔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체념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런 생각은 나를 또 다른 상념에 빠뜨리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는 것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어쩔 수 없는 것을 어쩔 수 없어 하는 것. 말장난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은 내게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일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을 어쩔 수 없어 하기 위해 무엇보다 책을 읽을 것. 내가 삶에 적응하려고 애쓸 때마다 내 옆에는 언제나 책이 있었다. 이건 누구의 말처럼 자부도 체념도 없이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글을 쓸 것. 타인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어느 누구의 감정도 건드리지 못하는 소통 불가능의 문장들을. 애초에 이런 글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나는 그동안 두 번 다시 읽지 않을 글을 얼마나 꾸역꾸역 써왔던가. 하지만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그것들이 없었다면 지금 내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내가 그것들에 생각보다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것도. (201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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