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멀미

시월의숲 2014. 7. 26. 13:45

오늘은 8시간이 넘게 차를 탔다. 고작 1시간 남짓 하는 교육을 듣기 위해서 기차와 버스, 택시와 지하철을 갈아타야 했다. 비행기와 배를 제외한 대중교통은 모두 이용한 셈이다. 광역시의 기차역과 버스역은 무척이나 커서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과 역에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 틈에서 나는 약간의 호흡곤란을 느꼈다. 나는 자리에 서서 잠시 숨을 골랐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지나갔다. 그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무언가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낯선 이방인에 불과했다. 아니, 이방인이라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는다. 그 속에서는 모두가 이방인이며, 모두가 낯선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사돈에 팔촌까지 알고 있는 시골에 비하면 그곳에서의 익명성은 알 수 없는 평온함을 주기도 했다. 나는 차를 갈아타야 하는 사이사이의 시간에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었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했기에, 나는 혼자서 편안하게 밥을 먹었다. 다행히도 내가 참석해야 하는 교육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으므로,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나는 그곳을 다녀올 수 있었다. 출장을 가기 위해 기차 시간을 검색하고 있는 나를 보고 직장 동료들은 다른 지역의 담당자와 연락해서 같이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조언을 했지만, 나는 내키지 않았다. 안면도 없는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타고 가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피곤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소 번거롭지만 몇 번의 환승을 거쳐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신경 쓰이는 일이다. 그보다는 혼자 여행하는 것이 더 편했다. 장거리 출장으로 인한 피로를 덜기 위해 버스보다는 주로 기차를 이용했다.

 

기차 안에서 가방에 넣어둔 소설책을 꺼내 읽었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기차 안에서 읽기에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또 책의 두께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가방에 넣어 다니기에는 불편할 것 같아서, 하성란의 <여름의 맛>이라는 단편집을 골랐다. 기차에서 왕복 6시간 정도 있었지만 고작 3편의 단편을 읽었다. 책을 읽기 위해 기차를 탄 것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급할 것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카카오톡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 손가락 놀림이 마치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빨라서 나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나 역시 책을 읽다 지치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또다시 책을 읽고, 다시 스마트폰을 만지곤 했다. 스마트폰이 없었을 때의 사람들은 기차나 버스를 기다릴 때, 지하철을 탈 때 과연 무엇을 했을까? 물론 그때는 스마트폰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듣거나 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이 잊히는 것일까.

 

나는 대합실에 앉아 내가 타야 할 차를 기다리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저들은 내게 무엇인가. 점점이 흩어지며 모이는 사람들. 나는 그들이 어떤 생명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걸어다니는 사물처럼 보였다. 나도 그 속에서는 한갓 사물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물속에 잠긴 것처럼,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몽롱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간혹 내가 누구인지 알리는 전화가 왔으나 전화 속 그들은 너무나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욱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비현실적인 시간, 비현실적인 장소, 비현실적인 사람들. 비가 간헐적으로 내렸다. 사람들이 간헐적으로 흘러갔다 흘러왔다. 나는 차가 아니라 사람 때문에 멀미를 할 것 같았다.(201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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