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순간의 삶

시월의숲 2014. 8. 4. 00:32

어제부터 계속해서 비가 온다. 주말동안 나는 춘천에서 내려온 고모를 만나러 고향에 다녀왔다. 원래 금요일 저녁에 만날 계획이었으나 직장 동료들과의 회식 때문에 토요일에 만나자고 했다. 고모는 회식에 참석하지 말고 금요일날 저녁에 보자고 계속 나를 다그쳤다. 나도 그러고 싶었으나 직장에서 큰 일을 끝내고 난 뒤의 회식자리라서 빠지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나는 거의 신입이나 다름없는 위치였기 때문에 더더욱 빠질수가 없었다. 한국사회에서의 회식이란 그런 것이다. 외국사람들에게는 회식이라는 것이 이해하기 힘든 문화일지라도, 한국사회를 살고 있는 나에게는 업무의 연장인 회식자리에 빠진다는 것은 동료들과의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하는 어려운 일인 것이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나로서는 회식이라는 것이 정말 곤란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게 묵묵히 보이지 않는 폭력을 감내하며 적응하려고 애쓰는 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모는 토요일날 만나자는 내 말에, 그러면 아예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태풍도 올라온다고 하고, 토요일날 갔다가 하루밤만 자고 오는 것이 번거롭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모의 그 말에 약간의 당혹스러움과 미안함을 느끼며, 그러지말고 이번에 오면 또 보기가 힘들텐데,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얼굴 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휴가라는 것이 꼭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오랜만에 얼굴보며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휴가 아니겠냐고 달래듯 말했다. 고모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럼 가겠다고 했다. 나는 들리지 않게 작은 한숨을 내쉬며, 잘 생각했다고, 조심해서 오라고 말했다. 예전에 고모와 카톡을 하다가 갱년기라는 말을 주고 받았던 기억이 났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들어 변덕이 심해지고, 어린아이처럼 고집스러워지는 고모를 느낄 때마다, 갱년기라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약속을 했지만, 나는 금요일 저녁에 술을 많이 마셨고, 그래서 다음날 고모의 전화를 받고서야 일어났다. 나는 숙취로 욱신거리는 머리와 자꾸만 아래로 처지는 몸을 이끌고 운전대를 잡았다. 그날은 하필이면 물고기 잡이 축제가 열리는 날이라 평소 조용하던 읍내가 차와 사람들로 들썩거렸다. 겨우겨우 집에 도착하여 고모를 만났다. 고모는 나를 보자마자 '내 그럴 줄 알았다', '내가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라고 해서 왔더니, 기다리게 하고, 이게 뭐냐' 등등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나는 운전 때문에 곤두선 신경을 가라앉히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고모가 하는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서 쉴 걸 하는 후회가 잠시 들었으나, 고모에게 내색을 하지는 않고,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 나는 미안했지만 왜 미안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오히려 나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모를 보는 것은 물론 좋았으나, 내가 처한 상황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의문스러웠고,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조금 슬퍼졌다. 고모와 나, 아버지, 이렇게 세 명이서 점심으로 막국수와 만두를 먹었고, 저녁엔 족발을 시켜 먹었다. 저녁을 먹고나서 산책을 하기 위해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오려는데 비가 한 방울씩 떨어져서 우리는 우산을 하나씩 챙겨 들고 걷기 시작했다. 냇가엔 낮에 하던 축제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듯, 제법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내 고향에 설치된 음악분수를 보았다. 음악분수를 끝까지 보고 난 후, 천천히 냇가를 걸었다. 비가 조금씩 거세지기 시작했으나 개의치않았다. 조금 위쪽으로 올라가자 자그마한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적당한 자리에 앉아 공연을 보았다. 공연의 레파토리는 팝페라, 국악, 가요, 퍼포먼스 등으로 다양했다. 가수들은 비를 맞으며 노래를 불렀다.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축제 때문에 생긴 포장마차에 가서 파전에 술을 마셨다. 천막 위로 비가 고여서 주인이 연신 물을 퍼냈다. 천막 사이로 빗물이 떨어져 내가 앉은 자리에 조금씩 물이 튀었지만 그리 신경쓸 정도는 아니었다. 포장마차에서 서빙을 하는 아줌마는 손님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주문한 안주를 가져다 줘야 하는데, 도무지 어디에 가져다 줘야 하는지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인이 몇 번이고 말을 해야 겨우 알아듣는 눈치였다. 저렇게 해서 어떻게 서빙을 하지? 의문이 들었으나 그건 그들의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그러는데는 무슨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전과 술을 다 마시고 다시 걸어서 집으로 왔다.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밤새 내리는 비에 고모는 몇 번 잠에서 깼다고 했다. 나는 아주 깊은 잠에 빠졌는지,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어제부터 내린 비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계속 내린다. 오늘 고모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운전을 하여 집으로 왔는데,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서 멀리 돌아서 와야 했다. 빗속에서 운전을 하기는 처음이었다(물론 운전에 관해서라면 모든 것이 처음이다). 운전을 하고 일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작은 접촉사고가 있었다. 그건 순전히 내 잘못이었다. 사람이 다치진 않았지만, 만약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 이후로 운전을 하면 나는 항상 순간을 생각하게 된다. 삶이 변하게 되는 한 '순간'. 삶이 그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뉘게 되는 한 '순간' 말이다. 어쨌거나 고모와 함께한 순간들도 지나갔다. 그렇게 나는 매 순간을 살고 있다. 그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때론 섬뜩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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