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원래 그런 사람

시월의숲 2014. 8. 3. 17:52

그것의 구체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고 했다.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설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까 현재의 나 혹은 우리의 특이한 증상은 과거의 심적 충격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특별한 트라우마가 없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그러한 현상에 대해 그들 모두가 트라우마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하지만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쉽게 납득할만한 생각만 하려하며, 그 이외의 것들, 예외의 것들, 작은 가능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거나 아예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러한 현상이 반드시 트라우마 때문은 아나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그것은 트라우마도 뭣도 아닌, 태어날 때부터 그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본능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감당하기 힘든 진실보다는 그럴듯한 현실적인 이유를 들먹이며 그것이 진실이라고 쉽게 믿어버린다. 진실의 맨얼굴과 대면하기 보다는 거짓의 얼굴에 만족하며, 그것이 주는 안락함에 몸을 던진다. 설마 그럴 리가!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설마는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며, 생각보다 그것은 우리와 가까운 곳에 실제로있다. 중요한 것은 원인이 아니다. 세상엔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있다. 원인을 밝히는 것이 쓸데없는 일인 경우도 있다. 원인을 밝힌다는 것이 결국은 자신들이 편한 데로 이해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해하기 위함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생각이 옳았음을 스스로 밝혀 자축하기 위한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누구를 이해할 수 있는가? 우리는 타인을 진정 이해할 수 있는가? 오만하고 자의적인 이해보다는 오히려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그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인정은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저마다 생각의 틀이 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틀이란 것이 얼마나 초라하고, 가변적인지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이 가진 틀에 넣어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그 다음이리라. 그래, 그건 원래 그런 것이라고. 원래 그런 사람들도 있다고. 그들이 당신의 눈에 참으로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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