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취중슬픔

시월의숲 2014. 8. 11. 22:37

사람을 만나는 일이 즐겁거나 기대되는 일이되면 좋으련만,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더 꺼려지고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은 왜인가? 예전에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나는 만나기 전부터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우울함을 느꼈다. 그들과의 만남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과 만나면 나는 곧잘 술을 받아 마시고, 즐겁게 이야기도 하면서 끝까지 술자리를 함께 한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지극히 술자리를 즐기고 있으며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거워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간신히, 정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그 자리를 견디고 있는 것이다. 모임에 가기 전부터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압박감과 답답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정말 안간힘을 다해 그 자리를 즐거워하는 것처럼 가장한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향해 착하다, 인간성이 좋다, 모나지 않는 좋은 성격을 가졌다는 등의 이야기를 한다. 나는 뜻하지 않은 칭찬에 기분 좋은 표정을 짓거나 과찬이라는 말을 하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겸손의 제스처를 취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칭찬의 말에 전혀 기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저들은 진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것인가? 진정으로 내가 어떤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저들은 피상적인 나, 그들 눈에 보이는 나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내가 아닌 타인을 연기하며 그들의 기분과 그들의 생각, 취향, 가치관에 나를 맞춘다. 내가 나라는 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말은 전혀 그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이 보고 싶은 나의 모습만을 보며, 나또한 그들이 보려하는 내 모습을 연기할 뿐이다. 따라서 사람들과의 만남 후 홀로 남겨진 나는 어쩔 수 없이 극심한 피로와 우울에 시달린다. 언제까지 연기를 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고(삶이란 끝까지 연기가 필요한 무대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때로 나는 나 자신이 견딜 수 없이 역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나를 가엽게 여긴다. 내가 아니라면 누가 나를 가엽게 여길 것인가? 나는 스스로의 고독 속에 침잠하며,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고독의 성을 쌓는다. 그 누구의 말도 소용이 없다. 그들이 하는 말은 나를 위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극히 이기적인 발상에서 나온 말일 뿐이다. 타인을 위한답시고 하는 모든 일들이 결국은 자신을 위하는 일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 그들은 그런 아이러니 속에 자신을 담그고, 거대한 착각 속에서 삶을 마친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코 알 수 없으리라. 착각이 실제라고 믿는 그들의 머릿속에서 그것이 착각일수도 있음을,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일수도 있음을 깨닫는 것은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원한 착각 속에 사는 그들과 내가 만나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일까? 우리들의 대화는 피상적이고, 핵샘을 벗어나 있으며, 중언부언하고, 진심을 알 수 없고, 결정적으로 공허하다. 그렇다, 공허. 우리들의 대화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나눈 수많은 말들, 우리가 진정 이해한다고 믿었던 마음 속 표현들, 웃으며 말했던 다정한 표현들, 걱정하며 건네던 위로의 말들이 결국 허공에 지은 성, 모래 위에 지은 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우리들의 대화는 흩어지고, 말들은 부서지며, 서로의 마음 속에 건네지지 못하고, 허공 속에 먼지처럼 흩어지고 만다. 그러한 말 뒤에 남는 것은 깊은 단절과 허무뿐. 우리는 결국 서로를 한 치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쓸쓸하게 깨달을 뿐이다. 우리가 원한 것은 무엇인가? 그저 술을 마시는 것외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술이나 마시는 편이 서로를 기만하지 않는 최선을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래, 술이라면 마시리라. 쓴약을 마시듯 그렇게 마시리라. 하지만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서로의 진심을.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그들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도. 내가 이렇게 중언부언하며,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것은 결코 술을 마셨기 때문은 아니다. 결단코 그런 것은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슬픔 때문이다. 그렇다.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커지는 슬픔이 나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보고 싶지 않다. 그들의 말을 듣고 싶지 않다. 그들이 하는 말은 나를 죽게한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명랑해진다. 나는 명랑하게 죽어간다. 그들이 결코 나를 알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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