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다층적인 푸른빛의 하늘

시월의숲 2014. 8. 17. 21:30

둔치 아래는 다른 세상 같았다. 둔치 위에서의 차량의 소음과 신경과민의 속도와 신호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내가 이 도시에 와서 처음으로 아무런 목적없이 하천을 따라 걷기 위해 사택에서 나왔을 때만해도 이 정도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계단을 내려왔을 뿐인데, 그곳엔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내가 너무 호들갑을 떨고 있거나 쓸데없는 감정 과잉 때문이라고 누군가 말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세상이라니. 다른 세상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다니. 하지만 나는 단연코 다른 세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둔치 위의 세상과 그 아래의 세상. 무언가를 두 부류로 나누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세상은 둔치 위의 세상과 그 아래의 세상으로 나눌 수 있다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으리라. 나는 천천히 주말의 늦은 오후를 하천을 따라 걸었다. 어느 도시든 마찬가지겠지만, 이 도시도 하천을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은 하천의 외곽, 그러니까 시내와는 정반대로 떨어진 곳이었다. 하천의 양쪽으로는 자전거 도로와 파크 골프장이 길게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듯 군데군데 이름모를 풀들이 길게 자라있었는데 오히려 그것에서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다리와 다리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될까 가늠하며 하천을 따라 걸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 파크 골프를 즐기는 사람, 낚시를 하는 사람, 텐트를 쳐놓고 음식을 먹는 사람, 물 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쳤다. 나는 두 번째 다리에 가까이 와서 걸음을 돌렸다. 계속 갈수는 없었으므로, 나는 발걸음을 적당한 곳에서 돌려야 했다. 오면서 봤던 하늘과 가면서 보는 하늘이 같지 않았다. 태양은 북쪽으로 지고 있었지만 노을이 지진 않았다. 비가 온 뒤의 개운함이 맴돌았다. 하늘은 아직도 푸른빛을 띠고 있었는데, 한 가지의 푸른빛이 아니라 굉장히 다층적인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저 다층적인 푸른빛을 결코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애매모호하기 그지없는 '다층적인 푸른빛'이라는 말밖에는. 하지만 나는 묘사할 수 없는 푸른빛을 보았다는 사실에 설명하기 힘든 위안을 얻는다. 그 푸른빛은 내게 어떤 좌절감을 맛보게 했지만, 그것이 또한 내게 모종의 아름다움까지도 맛보게 했으므로.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는데 적잖은 위안을 줄 것임을 나는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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