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몽상가의 책상

시월의숲 2014. 8. 24. 21:45

일주일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요즘은 뭘 하든지 정신없는 나날들의 연속이지만, 지난 주는 그 절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어떤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서툼이 매 순간을 긴장하게 만들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간은 그 흐름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시간의 흐름을 느끼면서, 유유자적하게 생활한다고 해서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간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정신상태에 따라 시간은 느리게도 빠르게도 흐른다. 인간은 시간을 지배할 수 없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마치 지배할 수 있는 것처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시간을 지배한다고 생각한 순간 인간은 시간에 지배당한다. 허를 찔린다. 시간은 소리소문없는 무참한 정복자 혹은 지배자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인간 스스로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리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지난 주의 내가 그랬다. 눈을 떠보니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그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내가 한 일도 잊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 모든 것을 잊었고, 잊을 것이며, 잊고 싶다. 내게 남은 것은 극도의 피곤함이며, 이 피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는 꿈없는 잠을 원했다. 내 이런 작은 소망은 주말이 되어서야 겨우 가능해져서 어제와 오늘은 만사를 제쳐놓고 잠을 잤다. 잠을 자기 위해 잠을 잤다. 오로지 잠을 위한 잠 말이다. 하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잠은 오히려 나를 더욱 피곤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맹렬하게 잠에 빠져들었으나, 오히려 그것이 나를 또다른 피로 속으로 빠뜨리는 작용을 하리라는 사실을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나는 좀 더 부드러운 잠을 잤어야 했다. 아무런 생각도, 의식도, 꿈도 없는 완전무결한 잠의 상태. 그러한 상태가 되기 위해서 극도의 피로는 오히려 독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잠은 지속되지 않는다. 나는 살아있음으로 언젠가는 잠에서 깨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잠에서 깨어 화장실에 가야했고,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이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싫었으나 그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잠에서 깨웠고, 화장실에 가게 했고, 배를 채우게 했다. 그렇게 잠에서 깨었지만, 이것이 현실인지 잠인지 아직 몽롱한 상태에서 책을 펼쳐들었다. 지난 주에 거의 읽지 못한 페소아의 <불안의 서>였다. 나는 이 책을 무려 한 달이 넘도록 다 읽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불안하지 않다. 이 책은 그렇게 빨리 읽으면 안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페르난두 페소아도 극도의 피곤함 속에 나처럼 한없고, 꿈없는 잠을 원했다. 그가 이 책에서 주로 하는 말은 피곤하다, 이다. 그리고 잠을 찬양한다. 그만이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는 몽롱함 속에서 그의 책을 읽다가 이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닌가! 찬탄하면서 무릎을 친다. 이것은 언젠가 내가 나조차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흰 색의 종이에 펜으로 휘갈겨 적어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것은 <불안의 서>가 아니라 <잠의 서>가 아닌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몽상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책갈피 사이로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나는 또다시 잠에 빠져든다. 이것은 시간의 장난인가? 하지만 나는 불쾌하지 않다. 이러한 몽상을 기록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니, 저항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견디는 것이다. 시간의 파도에 휩쓸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것이 아닌, 나름대로 조금씩 삶을 견디는 나만의 유일한 방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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