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고양이를 부탁해

시월의숲 2014. 8. 25. 22:17

오늘따라 유난히 옆 방에 있는 고양이가 시끄럽게 울어댄다. 고양이는,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을 할 때면 꼭 베란다에 나와 방충망으로 가려진 철창 사이로 얼굴을 비죽 내밀고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침 저녁으로 그 고양이를 볼 수밖에 없다. 나는 동물들을 무심히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고양이도 그와 마찬가지로 물끄러미 바라본다. 특별히 고양이에 대한 호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호감이 있다면 오히려 강아지에게 있다. 강아지만큼 인간에게 친근한 동물은 없으니까. 어쨌거나 그 고양이는 보통 길거리에서 보이는 고양이들과는 좀 다르다. 그 고양이가 어떤 종인지는 알 수 없지만(굳이 알고 싶지도 않지만), 흔한 길고양이는 분명 아닌 것이, 눈매와 꼬리의 모양, 전체적인 털의 모습과 색깔이 여느 고양이와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길고양이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인간 친화적인 면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비굴하지 않는 고양이만의 도도함이 공존하는, 그러니까 보다 귀족적이라고 해야할까, 암튼 그런 면이 있다. 귀족적이란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다른 적당한 표현을 찾기가 힘들다. 귀족적이든 그렇지 않든, 고양이의 입장에서 보면 무엇이 더 행복한 삶일지는 알 수 없다. 길거리에서, 후미지고 낡은 건물의 구석과 자동차 아래를 기어다니면서, 인간들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먹다가 다가오는 인간들의 위협에 몸을 숨겨야 하는 고양이의 운명과, 값비싼 사료를 먹으며 닫힌 방 안에서 하루종일 창밖만 내다보고 있어야 하는 고양이의 운명 중에 무엇이 더 나은 삶이라 할 수 있는가? 보다 행복한 삶의 조건 중의 하나가 자유라면, 과연 어떤 고양이가 더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 같지만, 늘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 전전긍긍해야 하고, 때로는 미친듯이 질주하는 자동차의 바퀴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질지도 모르고, 썩은 음식을 먹고 죽거나 사냥꾼의 손에 잡혀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고양이와, 갇혀 있는 것 같지만 늘 인간에게 음식을 하사받고 인간들의 재롱에 같이 놀아주지만, 언젠가 늙고 매력이 떨어지면 버려질지도 모를 운명에 처한 고양이 중에 말이다. 나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고양이의 운명을 생각한다. 특히 아침 저녁으로 만나는 고급스러운 털을 가진 이름 모를 고양이를 보면서 고양이의 삶과 운명에 대해서 생각한다. 길거리의 고양이나, 집안에 갇힌 고양이나 모두 인간들에게 유린당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지 않을까? 얼핏 다른 듯 같은 삶, 다른 듯 같은 운명의 고양이들. 갇힌 고양이는 자신이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갇혀 있었다면 갇혀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혼자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까? 나는 고양이를 보면서 인간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고양이의 운명이 아니라 인간의 운명을? 어쩌면 그 둘은 다른 듯 같은 삶, 다른 듯 같은 운명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든다. 고양이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나도 무심히 고양이를 바라본다. 고양이는 내가 지나갈 때마다 야옹 야옹 소리를 낸다. 마치 자신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그래, 적어도 너는 거기에, 나는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서로 알고 있지. 서로 닿지 않아도 우리는 느낄 수 있어. 그리고 생각하지. 처음부터 갇혀 있지 않았다는 듯이. 아니, 갇혀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오히려 스스로 갇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듯이. 그렇게. 시작은 거기서부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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