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우리는 만난 적이 있을까

시월의숲 2014. 9. 1. 00:10

사람들은 때로 타인을 이해하기 힘들거나, 진실을 감당하기 어려울 경우 세상이 만들어놓은 규범과 관습에 자신을 합리화시키듯 그렇게 타인을 합리화시켜서 애써 이해하고자 한다. 어떻게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신 스스로가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아내어 스스로를 설득하고, 심지어 상대방을 설득하려 한다. 그리고 자신이 찾아낸 이유를 진실이라고 믿어버린다.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거나 설사 생각한다고 해도 차마 그것을 말할 용기가 없어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성급히 단정지어 버린채, 안온한 삶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그러는 편이 모두가 평화롭다는 것(적어도 겉으로는)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겠어,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으련만. 그들은 그렇게 말하며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저주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것이 모두를 위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때로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그것이 모두를 속이고, 결국 자기자신을 속이는 일이 아닌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나침반을 잃고 헤메이는 여행자가 된 것 같고, 망망대해 위를 표류하는 배가 된 것 같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무엇이 옳은 길인지, 무엇이 나를 위하는 길인지, 무엇이 모두를 위하는 길인지. 옳은 길이란 것이 있는 것인지, 나를 위하는 것이 타인을 절망에 빠뜨리는 길은 아닌지, 모두를 위하는 길이란 과연 있는 것인지. 나는 혼란스럽고 또 혼란스럽다. 그 혼란이 나를 불안에 빠뜨리고 불안은 나를 또다른 혼란 속으로 밀어넣는다. 거기서 내 사고는 정지되고, 나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음'의 상태에 빠진다. 알지만 모르는 척 하는 상태가 과연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그들은 나를 그들의 생각대로 생각하고, 나는 그들을 내 생각대로 생각한다. 우리들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우리는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나눈 말들은 모두 허상에 불과하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의 진심을 서로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알 수 없고, 여전히 컴컴한 어둠 속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로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데. 우리가 언제 만난 적이 있는가? 때때로 나는 그것조차 알 수 없다. 그 사람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저멀리,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것만 같다. 아주 먼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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