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4시의희망

Glenn Gould - J. S. Bach, Goldberg Variations (BWV 988)

시월의숲 2014. 9. 29. 21:50

 

J. S. Bach, Goldberg Variations (BWV 988), Glenn Gould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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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몰락하는 자>를 읽고, 미셸 슈나이더의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를 읽고 있자니,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지 않을 수 없다고. 나는 예전에 그것을 CD를 통해 들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들은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내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가 들은 것은 무엇이었나? 글렌 굴드라는 이름과 곱추처럼 어깨를 한껏 수그리고 피아노 건반에 코를 박을듯 가까이 연주하는 그의 모습에 이끌려 나는 CD를 샀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연주하는 바흐를 제대로 감상하지 않고, 그저 CD를 소장함으로써 나는 그의 음악을 들었다는 착각 속에 산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내 허영을 채우기 위해 글렌 굴드를, 바흐를,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글렌 굴드를 '읽음'으로써 비로소 그의 연주를 다시금 '듣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글렌 굴드와 미셸 슈나이더의 글렌 굴드가 서로 다르고, 그래서 무엇이 그의 본 모습에 가까운 것인지 판단하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지만 그의 음악은 변함없이 내 앞에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