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거기, 문장들 사이로

시월의숲 2014. 10. 18. 21:27

언제나 내 삶은 현실의 조건 때문에 위축되어 있다. 나를 얽매는 제약을 좀 해결해보려고 하면, 어느새 같은 종류의 새로운 제약이 나를 꽁꽁 결박해버리는 상태다. 마치 나에게 적의를 가진 어떤 유령이 모든 사물을 다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내 목을 조르는 누군가의 손아귀를 목덜미에서 힘겹게 떼어낸다. 그런데 방금 다른 이의 손을 내 목에서 떼어낸 내 손이, 그 해방의 몸짓과 동시에, 내 목에 밧줄을 걸어버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밧줄을 벗겨낸다. 그리고 내 손으로 내 목을 단단히 움켜쥐고는 나를 교살한다.(54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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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글을 읽고 위안을 받는다면, 그것은 내가 위안을 받고 싶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그 글이 내가 처한 상황과 맞지 않고, 내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도 않으며, 글 속에 어떠한 해결책도 들어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것을 바랐기 때문에? 하지만 아무 책, 아무 문장이나 그런 것은 아니리라. 그것은 페소아의 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기형도의 시가 그러하듯.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문득 <불안의 서>를 집어 든다. 그리고 그의 문장을 읽는다. 거기, 문장들 사이로, 어떤 감정이 흘러나온다.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모순으로 가득 찬 어떤 감정이 느껴진다. 그것은 내게 알 수 없는 위로를 준다. 이것이 단지 내 마음의 혼란 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감정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나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내가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므로. 그렇게 나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조금,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