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내가 가진 것

시월의숲 2014. 10. 29. 20:34

나도 떼를 쓰고 울부짖으며, 너에게 매달리고 싶다.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부르짖고 싶다. 왜 나에게 이것밖에 하지 못하냐고 당당하고 뻔뻔하게 말하고 싶다. 나도 너에게 엄마를, 아버지를, 오빠를, 형을, 누나를, 언니를, 삼촌을 바라고 싶다. 물질적인 것이든 심적인 것이든 무한정으로 바라고만 싶다. 나는 기껏해야 빵 하나를 사주면서, 너에겐 그것도 과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네 바람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내가 왔다는 사실만으로 너는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한없이 이기적이고 싶다. 그러고도 그것이 이기적인 거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싶다. 오로지 나는 너에게 바라기만 할 뿐,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네가 어떤 기분으로 살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다. 네가 어떤 불안에 떨고 있고, 어떤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나는 전혀 모르고 싶다. 내가 아픈 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시급하며, 그 어떤 일도 내가 아픈 것과 힘든 것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생각하고 싶다. 나 이외에는 그 무엇도 말해서는 안 되며, 오로지 나, 나 자신만이 말해질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나에겐 그럴 수 있는 '너'가 없다. 한없이 응석을 부리고, 징징거리며, 떼를 쓰고, 울부짖을 '너'가 없다. 내가 가진 것이라곤 '나'밖에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 그런 나조차도 나를 배반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일종의 코마 상태에 빠진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행동도 할 수 없다. 아마도 그럴 때, 인간은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는 것이리라. 그렇게 죽음이라는 강력한 자기장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리라. 소용돌이치는 파도의 고요하고도 섬뜩한 침묵. 그 침묵은 무언의 극단적 선택을 강요한다. 너는 알 수 있겠니. 그런 상황에서 인간이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너는 모른다. 아마 영원히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너의 고통과 아픔과 슬픔만이 온 세상, 온 우주의 전부이므로.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한 채, 오해의 장막 속에서 살다 죽을 것이다. 나는 너를 모르지만, 나는 네가 때론 몹시도 부럽다. 그렇게 서슴없이, 당당하고 뻔뻔하게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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