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내가 아닌 나

시월의숲 2014. 10. 17. 23:50

이상한 조직 속에 들어와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였다면 기기묘묘한 사물들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재미라도 있었을텐데, 이곳은 호기심을 반감시키는, 오히려 알고 싶지 않은 것들로 가득한 곳이다. 이상한 규칙과 이상한 눈치, 이상한 생각, 이상한 행동, 이상한 지시로 가득한 곳. 하지만 나는 이미 들어와 버렸고, 자발적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어떻게든 견뎌야만 한다. 이곳은 나에게 돈을 주므로, 쉽사리 박차고 나갈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모두 돈의 노예이므로. 우리는 돈 때문에 참고, 돈 때문에 견딘다. 그러므로 모든 직업은 필연적으로 우울하다. 나는 새삼 사람들을 대하는 것에 심각한 장애가 있음을 깨닫는다. 특히나 조직 사회에서의 위계 질서라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이상한 복종을 강요한다. 그 보이지 않는 질서 속에서 나는 때로 숨이 막힐 지경이지만,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이상한 건지, 그들이 이상한 건지 모르겠다.

 

사회 생활을 하면 할수록 나는 왜 점점 더 작아지고, 위축되는 것일까. 나는 왜 무엇이든 익숙해지지 않고, 여유가 생기지 않는 것일까. 조직사회에 속한 인간들의 미묘한 감정의 부딪힘들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나는 온통 질문들에 둘러싸여 있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일까. 나는 나를 지켜내면서, 나만의 방식으로 그들을 대할 수 있을까. 다들 내가 아닌 다른 나를 말하지만, 나는 '그들이 바라는 나'가 아닌, '내가 원하는 나'가 되고 싶다. 하지만 그 소망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내가 아닌 나를 연기하고 있으니까. 다만 그 연기가 서툴고 보기에 끔찍할 뿐.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나 자신이 견딜수 없이 비참하게 느껴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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