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사소한 생각들

시월의숲 2014. 11. 14. 23:02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가 있다. 10월보다 11월이 더 바쁠 줄은 몰랐다. 늘 그랬듯이,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무엇을?). 전국민의 관심이 쏠린 수능도 끝이 났고, 그에 응답하듯 추위도 찾아왔다. 차가 있지만 어디든 가지 않았고(갈 수 없었고), 책도 읽을 수 없었으며, 텔레비전도수 없었다. 내 스마트폰의 통화량과 데이터 사용량이 거의 없어서 제일 낮은 요금제로 바꾸었고, 저녁을 일주일 넘게 집 밖에서 먹었다. 일주일 전에 사놓은 식재료들이 냉장고 속에서 점차 상해가고, 우유는 유통기한이 몇 일이나 지났지만 버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며칠 전에는 뜻밖의 선물을 받기도 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서 받은 것인데, 귤향이 가미된 삼나무차였다. 그는 내게 그동안 도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사실 별로 도와준 것도 없었지만, 나는 알았다고 말했다. 상큼한 귤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얼핏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런 선물이 인간관계를(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만들어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나는 그와 정반대의 인간이라는 생각도.

 

뒤돌아볼 사이도 없이 계속 한가지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예를 들면, 일이면 일, 사랑이면 사랑, 돈이면 돈, 명예라면 명예 등등. 그것은 사람을 더 피폐하게 만드는 일일까 아니면 더욱 살아있게 만드는 일일까? 누군가는 더욱 피폐하게, 누군가는 더욱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리라. 나는 어느 유형에 속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살아가는 일 자체가 점차 피폐해져가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다만 조금의 여유를 바란다. 정신 없이 바쁜 와중에도 한 숨을 돌리며 차 한 잔 느긋하게 할 수 있는 여유. 심각한 표정으로 컴퓨터만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심각하지만 때론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여유. 아무리 피곤해도 몇 페이지의 글을 읽을 수 있는 여유. 뭐 그런 것들. 무엇 때문에 다들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지 나는 때로 의아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달리고 있었던 것일까? 사실은 그렇게 열심히 달리고 있지도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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