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나로 인해 누군가

시월의숲 2015. 1. 5. 00:16

갑작스럽고도 의도치 않은 고백에 나 자신조차 얼떨떨하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장소와 시간과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다그치는 사람들과 그들이 퍼붓는 말들 속에서 너무나도 순간적으로 말을 내뱉고 말았다. 나는 저절로 눈물이 났고, 몇 번이나 숨을 가다듬어야 했으며, 시선은 아래를 향했고, 손은 미세하게 떨렸다. 내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나도 나를 어찌할 수 없음을. 마치 누군가 나를 조종이라도 하듯이, 그 순간 나는 내가 아닌 것만 같았다. 나한테서 어떻게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알 수 없다. 더이상 나를 오해하도록 놓아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수많은 날들을 고민하며 보냈던 것에 비해 고백은 한순간에 끝이 났다. 예기치못한 순간에, 깨져버린 유리병처럼, 흘려버린 물처럼, 날아가버린 깃털처럼, 새어나간 모래처럼 그렇게. 고백을 하면, 커다란 짐을 놓아버린 것처럼 후련할 것만 같았는데, 오히려 더 무거워지는 마음은 무엇인지.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할지. 가슴이 아프다. 가슴이 너무나도 아프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다그치고 또 다그친다. 나로 인해 누군가 가슴 아파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나로 인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슴 아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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