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당신의 방은 어디입니까

시월의숲 2015. 1. 24. 22:30

아마도 소설가 신경숙이었을 것이다. 요즘같이 노트북이 있어 어느 곳에 있든 글을 쓸 수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글을 쓰기 위해 항상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반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워낙 여행을 좋아해서, 여행지에서 주로 글을 완성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글 속에 등장하는 글로벌한 소설 배경만 보더라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배수아는 글을 쓰기 위해 독일로 간다고 하니(그에게 있어 여행이란 그저 작업실의 이동에 다름 아니므로), 작가에게 글을 쓰는 장소란 당연하게도 작가마다 다르며, 그것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내 방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글쓰기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나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장소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그곳에서 글을 쓰면 색다른 무언가를 쓸 수 있고, 꽉막힌 무언가를 뚫을 수 있는 것인지. 아마도 그런 장소는 존재하는 것이리라. 아니, 그런 장소가 있을 것이라는 상상만으로도 작가에게는 창조적 영감이 떠오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글을 쓰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내 방이 아닌 다른 방으로. 그것은 비단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독자로서, 내가 어떤 작품을 어느 곳에서, 어떤 심리적, 정신적인 상황에서 읽느냐에 따라 그 작품은 내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내가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며칠 째 나는 집에 있는 컴퓨터로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했다. 나는 그 컴퓨터를 내가 일을 시작할 때 구입해서 지금까지 쓰고 있었지만, 며칠 전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인해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게 되었다. 포맷을 할지 아니면 이참에 새로 구입을 할지 망설이고 있다. 불과 며칠 동안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한 것 뿐인데, 사무실에서도 충분히 인터넷을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스레 드는 허전함 때문에 며칠 간 좀 우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것은 마치 친한 친구를 잃은 것 같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던 가느다란 실 하나가 끊긴 것 같은, 그래서 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그런 기분이 들게 된 것이 단순히 인터넷이 끊겼기 때문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는 생각이 들자, 내가 너무나 외롭고 고독한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시렸다.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친구도, 사랑하는 이도 하나 없이 이 세상을 너무나도 차갑게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나는 잠시동안이지만 숨을 쉬기 힘들었다. 나는 겨울보다 더 차갑고, 얼음보다 더 단단하며, 태풍보다더 더 세차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 때문에. 사무실에서 이런 글을 쓰고 있으니 기분이 좀 이상하고, 고작 인터넷이 안된다는 이유로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당혹스럽지만, 아무튼 그때 느낀 그 기분 때문에 며칠 간 나는 우울했다.

 

내 방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글쓰기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어느 곳에서나 글을 쓸 수 있고, 그 글이 장소의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생각해보면 나는 늘 내 방이 아닌 곳에서 글을 썼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이란 그저 임시 거처에 지나지 않았다. 나에게 '자기만의 방'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정 '자기만의 방'이란 것이 존재하는가? 임시 거처가 아닌 곳이 정영 존재하는가?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거쳐간 모든 곳이 내 방이었다고. 내가 있는 모든 곳이 다 내 방이자 내 방이 아님을 나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그래서 늘 외롭고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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