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타인의 진심

시월의숲 2015. 1. 19. 23:38

김연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 이런 문장이 있다.

 

  " 타인의 진심이라는 건 꽤 부담스러운 거야. 원치 않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사슬이기도 해.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진심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사슬을 채우는 건 옳지 않아."(227쪽, 단편「우는 시늉을 하네」)

 

얼핏보면 굉장히 상식적이고 평범한 말인데, 나는 저 문장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아마도 요즘의 내 심정이 저 문장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부담스럽지 않은, 가벼운 진심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그런 것이라면 타인에게든 가족에게든 무거운 사슬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진심이란 무엇일까. 아니, 그보다, 진심이라는 것이 적어도 타인에게 무거운 사슬로 작용하지는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 아닌가? 진심이라고 다 통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발설하지 말아야 할, 발설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하지만 발설하지 않을 수 없는, 발설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하는, 그리하여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드러나고야 마는 것이다. 진심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것인가. 진심을 발설하고 난 이후,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진심과 비밀은 얼마나 다른가 혹은 얼마나 같은가. 알 수 없다. 내 진심이 무엇인지조차 나는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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