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그건 네 생각, 이건 내 생각

시월의숲 2015. 2. 7. 21:50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과의 대화란 그 자체로 이미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런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않거나, 아예 만나지 않는것이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할까.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고,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면? 사회생활이란, 내가 만나기 싫은 사람과도 만나야 하고, 하기 싫은 것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우리는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내가 느끼는 고통의 깊이는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그가 생각하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그가 확연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서로 알고 있다.

 

그는 그의 생각과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나는 내 생각과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추진력이 강하고, 목소리가 크며, 단호하고, 카리스마가 있다. 반면 나는 수동적이고, 타협적이고, 말을 하기 보다는 경청하며, 목소리가 작고, 어쩌면 우유부단하며, 소심하다. 그는 결단을 내리는데 추호의 망설임이 없으며, 나는 작은 결정 하나에도 수많은 생각을 한다. 이런 차이점은 그와 내가 있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개별적인 성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적극성과 단호함을 가지라고 하지만, 나는 그가 말하는 혹은 가지고 있는 적극성과 단호함이 내가 하는 일에 굳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도 충분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이런 내 생각을 한 번에 일축해버린다. "그건 네 생각이고!" 그렇다. 그건 내 생각이다. 나는 내 생각과 방식대로 일을 처리한다. 그가 내게 적극성과 단호함을 요구한다면, 나는 나만의 적극성과 단호함을 말할 것이다.

 

누군가를 쉽게 단정짓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 사람을 너무 쉽게 단정지어 버린다.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아주 단순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수천, 수만의 다양한 결을 가진 섬세한 존재이기도 하다. 어쩌면 내가 속한 조직에는 그가 말하는 인간을 더 선호할지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속한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가 말한대로 내가 변한다면, 그렇게 변한 나를 진정한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내가 나'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그것은 마치 나를 잃어버리는 것처럼 가슴이 아픈 일일 것이다. 진정한 리더라면, 구성원의 개성을 파악해서 그것을 업무에 어떻게 극대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개성을 죽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이용해서 보다 나은 결과물을 산출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은가? 단점을 보완하기 이전에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좋지 않은가? 모두가 다 알렉산더 대왕이 될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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