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부석사

시월의숲 2015. 2. 2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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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부석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문득, 이란 말은 사실이 아니다. 내 마음 한 켠에는 늘 부석사라는 이름이 자리하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언젠가 읽었던 신경숙의 <부석사>라는 소설 때문일지도 모르고, 부석사에 얽힌 이야기가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렸을 때 역사책을 통해서 보았기 때문이거나, 매스컴을 통해 너무 많이 접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마음 속 어떤 열망을 가진채 홀로 부석사에 갔다. 다녀온 사람의 말로는 다른 절보다 더 많이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조금 올라가자 바로 절이 나왔다. 유명한 절답게 구경 온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이곳의 스님들은 이 많은 관광객들이 내는 소음과 번잡스러움 속에서 어떻게 수양을 할까 궁금했다. 유명한 절이 그렇듯, 고요한 산사의 풍경은 기대할 수 없었다. 이곳 저곳을 구경하다가 하얀 펜글씨가 쓰여져 있는 기왓장을 보았다. 가족들의 건강과, 연인들의 사랑, 수능 대박 등을 기원하는 글귀가 쓰여져 있었다. 이 많은 소원들, 염원들을 부처님은 어떻게 들어주실 것인지. 무량수전 안의 부처상은 눈을 가느다랗게 뜬채 생각에 잠긴 듯 중생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어쩌면 침묵을 설파하는 중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도착한 부석사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무엇을 보기 위해 나는 홀로 부석사에 올라간 것인가. 내가 부석사에 가고자 했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내가 본 것은 어쩌면 오래된 빛, 빛을 잃어버린, 빛의 자국만 남은 시간을 보러 간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어떤 것들은 갈색으로 변한다. 그날따라 햇볕이 비치지 않았고, 그래서 갈색은 그 본연의 색을 모든 사물을 통해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오래된 것들이 내는 갈색의 빛 속에 온전히 잠겼다가 온 날이었다. 나도 저 갈색빛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던가.


(201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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