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서울이라는 도시

시월의숲 2015. 3. 6. 22:28

서울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는, 당연하게도 혹은 이상하게도 서울이라는 도시에 가 볼 기회가 없었다. 내가 서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거짓말을 좀 보태서) 우리나라의 수도라는 것밖에 없을 정도이니, 서울이란 내게 얼마나 낯선 도시인지 짐직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은 마치 헐리우드가 그러하듯이, 영화나 텔레비전 속에서만 등장하는 낯설고 이질적인 도시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이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은 마치 이국의 땅, 미지의 혹은 미개의 땅에 사는 원주민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놀랍지 않고(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곳이므로),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전혀 놀랍지 않다. 그들은 그들만의 탑을 쌓고 계속 위로만 올라가는 듯 보이고, 저 높은 첨탑 끝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또한 내가 사용하는 언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나는 그곳에서 완벽한 이방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배수아가 말했던 '이방인 놀이'를, 서울에서만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그곳에서 나는 내가 아니고, 너도 네가 아니다. 그곳에 주인이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닌 건물일 것이다. 차갑고 견고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위태로운 건물들. 시멘트와 벽돌, 대리석과 아스팔트의 숲을 유영하는 발없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 사람들은 말없이 죽어나가지만, 건물들만은 계속 살아남아 키와 부피를 키울 것이다. 섬뜩한 유령들의 도시. 인간들의 무덤. 내가 왜 이런 비관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주 가끔씩 서울이란 도시를 가게 되었을 때 느꼈던 단편적인 인상 때문일까. 어쩌면 며칠 전 서울로 출장을 다녀와서 느꼈던 상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서울로 출장을 갈 일은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생겨서 가게 되었다. 출장으로 어떤 도시를 방문하게 되는 경우에, 그 도시를 봤다고 표현해도 되는걸까. 출장이란 그곳을 구경하러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동서울터미널에서 내려 강변역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역사공원역에 내려 4호선으로 갈아탄 뒤 명동역에 내려서 목적지를 찾아갔다. 그리고 교육을 받은 후 다시 온 순서와 반대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탄 것이 전부인 그런 일정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게 서울은 많은 부분 지하철에서 본 사람들과 그들을 둘러싼 분위기로 남아있다. 건물들로 둘러싸인, 도시의 거리를 걸을 때 느꼈던 알 수 없는 답답함. 지하철에서의 탁한 공기와 무표정한 사람들과 물건을 팔기 위해 무어라 끊임없이 떠드는 사람들. 이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수없이 엇갈리는 시선들 속에 나는 앉아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고 있지만, 그들은 거기 없는 것만 같았다. 어떤 거대한 물결 속에 이리저리 흔들리다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느낀 것은 어쩌면 서울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것이 전부일지도. 만약 그것이 전부라면 서울이란 너무나 고독한 도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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