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하마터면

시월의숲 2015. 3. 8. 20:05

벌써 봄이라고 해야할까. 따뜻한 햇살이 모든 사물들 위로 내려앉았다. 나는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택시의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약간 차가운 듯한 바람이 따뜻한 햇살과 만나 적당한 온도를 이루며 피부에 와 닿았다. 눈이 부셨다. 창밖의 모든 풍경이 단지 따뜻한 햇살로 인해서 전혀 다른 풍경으로 탈바꿈한 것처럼 보였다. 공기의 성분이 좀 달라진 것일까? 달콤한 공기의 냄새를 한껏 들이마셨다. 사람들은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 때문인지 거리에 많이 나와 있었다. 초등학교를 지나칠 때, 신발을 신지 않고 미끄럼틀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았다. 오로지 미끄럼틀에 오르는 일만이 지금 자신이 해야할 유일한 일이라는 듯, 아이는 온 몸과 정신을 미끄럼틀에 집중하고 있었다. 저들에게 신발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귀 언저리에 와 닿았다. 갑자기 내가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계속 햇살 가득한 거리를 달리고 싶었다. 저기, 괜찮다면 아무데도 좋으니 이대로 계속 가 주실 수 있으신가요? 끝없이 펼쳐질 것만같은 이 거리를 계속 달릴 수 있을까요? 햇살이 가득한 이 공간 속을 영원히…. 나는 하마터면 기사님께 그렇게 말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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