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벚꽃통신

시월의숲 2015. 4. 9. 23:57

벚꽃이 만개했습니다. 저 남부지방에는 벌써 진 곳도 많다지만, 아직 내가 있는 이곳은 그 정도는 아닙니다. 지금이 한창 절정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며칠 날씨가 춥고 비마저 오는 바람에 한창 피려고 하던 벚꽃이 주춤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쌀쌀한 날씨와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야속하여, 그저께 퇴근길에는 직장동료에게 벚꽃 피는 것이 샘나서 비가 오고 추운 것 같다고 투덜대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그럼 이건 벚샘추위네요', 라고 말하지 뭐예요.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말을 생각해내지 못해서이기도 했지만, 어째서 그 말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의아하기도 했어요. 뜻하지 않게 재미난 것을 발견한 사람들처럼 한바탕 웃고 나서 우리는 도토리 묵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도토리 묵밥을 먹으면서, 흐리고 비 오는 날씨와 도토리 묵밥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요. 밥을 다 먹고 계산을 하는데, 주인 할머니가 글쎄 우리가 내야 하는 돈보다 만원이나 더 붙여서 말하는 바람에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할머니는 호탕하게 웃으며 다시 정정했지만, 우리는 놀라서 할머니를 빤히 쳐다봤습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웃는 할머니를 보고 우리도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어요.

 

아, 며칠 전에 만든 사과잼 이야기를 해볼까요. 애초에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은 사과를 집에 가져다 놓은 탓이겠지요. 어쩌면 처음부터, 먹다가 다 먹지 못하면 사과잼을 만들어야겠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내 주먹보다 조금 큰 사과 네 알로 사과잼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도 한 번 만들어 본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잘 만들 수 있겠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과를 깎아서 편으로 썬 다음에 설탕을 넣고 한 번 버무려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 상온에 놓아두어야 하는데 그 절차를 생략해버린 거예요. 사과를 깎고 설탕을 버무린 후 바로 뜨거운 냄비에서 조리기 시작하니, 사과에서 물이 나와 과육이 으깨지기도 전에 사과가 익어버린 거지요. 사과잼이 아니라 사과조림이 되어버린 결과물을 보면서 참담함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먹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병에 담아 식혔더니, 글쎄 물엿보다 더 딱딱해지는 바람에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만드는데 들었던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며칠 놓아두었는데 결국 오늘 버리고 말았습니다. 비록 결과는 나빴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을 만드는데 들었던 시간과 노력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과잼을 만드는 시간' 말입니다. 마트에서 설탕을 사고, 사과를 깎고, 설탕에 조리던 시간. 사과가 익고 설탕이 녹으면서 나는 향긋한 냄새와 그 냄새로 가득했던 주방과 그 주방에 있었던 나. 그것으로 충분했던 거예요. 다음번에 할 때는 분명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덤으로 생겼습니다.

 

아직 '벚샘추위'는 가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도 꽤 쌀쌀하여 외투를 벗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벚꽃은 지금 한창입니다. 당신이 계신 곳은 어떤가요. 당신도 출퇴근하면서, 혹은 점심을 먹은 후 잠깐의 산책 시간 동안 벚꽃을 볼 수 있으신가요. 아니면 멀리서라도 벚꽃을 볼 수 있으신가요. 나는 알 수 없지만, 당신이 계신 그곳도 부디 벚꽃으로 만개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 번쯤 벚샘추위라는 말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혹 도토리 묵밥을 먹게 된다면, 1인분에 얼마인지 정확히 알고 계산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당신이 사과잼을 만들게 된다면, '사과잼'보다는 '사과잼을 만드는 시간'에 대해서 생각하는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아침 출근길에 벚꽃잎이 많이 떨어졌다면 떨어진 만큼 많이 아쉬워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쉬운 것은 아쉬워하고, 즐길 것은 즐기면 되니까요

 

혹 '깊은 밤, 기린의 말'이라는 김연수의 단편소설을 아시는지요. 아무런 말에도 반응하지 않지만 유독 '기린'이라는 말에만 반응하는 자폐아(혹은 정신지체아?)가 나오는 소설입니다. 우리도 그 아이와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유독 '벚꽃'이라는 말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니까요. 그러니 이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요. '깊은 밤, 벚꽃의 말'이라고. 혹은 '벚꽃통신'도 좋겠습니다. 김연수가 처음 그 소설의 제목을 '기린통신'이라 지으려 했다지요. '벚꽃통신'이라고는 하지만 이 글이 당신에게 도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벚꽃이 다 떨어지기 전에 서로의 안부를 묻는 수 밖에 없겠지요.

 

어쨌거나 벚꽃은 지금 한창입니다. 부디 잘 지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