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이해할 필요도 없고 딱히 이해 못할 것도 없는

시월의숲 2015. 4. 3. 19:09

그는 책을 읽다가 어떤 문장에서 눈길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 문장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의 눈길을 뺏어간 문장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일생 이해할 필요도 없고 딱히 이해 못할 것도 없는 가족으로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1 그 문장은 소설 속 주인공과 그의 동생과의 관계를 묘사한 말이었는데, 어쩐지 그는 그것이 가족이라는 말의 보편적인 정의처럼 생각되었다. 보편적이지 않다면 적어도 그에게만은, 그의 가족에게만은 정확하게 일치하는 정의 말이다. 그러니까 가족이란, 일생 이해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이해 못할 것도 없는 존재들이라고 그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 가족만 그러한가? 그는 그러한 정의가 꼭 '가족'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뒤이어 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더이상 생각의 가지를 뻗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가족'에게만 국한해서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그것은 가족이라는 집단의 속성을 정확히 드러내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저 문장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는 이해할 필요도 없는데도 애써 이해하려고 했고, 딱히 이해 못할 것도 없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수없이 상처를 받은 끝에 그는 어떤 불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애써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 더 많으며, 반드시 이해해야만 하는 것 또한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므로 딱히 이해 못할 것도 없다는 말은, 가족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할 필요도 없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며, 그것이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완벽한 이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완벽한 오해 또한 존재하며, 완벽한 이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완벽한 오해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이해는 어쩌면 완벽한 오해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가족을 구성했던 이들이 하나 둘 이해와 오해, 불가능성과 어쩔 수 없음을 간직한 채 죽었고, 죽음은 많은 것을 덮거나 드러나게 했으므로. 그는 그러한 죽음의 경험으로 인해 저 문장과 더욱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는 어떤 예감이랄 것도 없는 자명한 사실을 인식했다. 그 자신이 '일생 이해할 필요도 없고 딱히 이해 못할 것도 없는 가족으로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그의 가족들 또한 그러하리라는 사실을.

  1. 편혜영,『밤이 지나간다』중 단편「비밀의 호의」, 90쪽, 창비, 201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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