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웃기지 않은 농담

시월의숲 2015. 4. 29. 23:30

그것을 묘한 성적인 긴장감이라고 표현해도 될까. 나는 그것을 나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서 느꼈다. 그는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몇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보여준 그의 높아진 억양와 과장된 어투, 어설픈 행동은 그러한 내 느낌에 확신을 가지게 했다. 그것은 물론 나를 향한 것은 아니었으나(정확히 그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더욱 정확히 볼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 소년들이 가질 수 있는 무모함을 가진 사람. 그 어떤 것에도 스트레스 따위는 받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얼굴이지만, 자신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그건 자신에 대한 편견이라고 말하는 사람. 누구보다 가정적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확신과 그렇기 때문에 부릴 수 있는 객기. 다듬어지지 않은 울퉁불퉁한 말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나약함. 나와는 전혀 닮지 않은,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 그를 보면서 생각했다. 성적인 에너지는 사람을 활동적으로 만들고, 큰 소리로 말하게 하며, 수다스럽게 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크게 웃고, 웃기지 않은 농담을 하고, 술을 권하게 만든다는 것을. 그것은 순간일 뿐일 삶을 한층 유쾌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만났다는 이유만으로도. 나는 그가 얼마간 부러웠지만, 그 때문에 조금 쓸쓸해지기도 했다. 그런 감정(자신도 느끼지 못하는)에 자신을 방치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아직 젊다는 사실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많이 늙은 것인가. 아니, 이제 나는 더이상 젊지 않은 것인가. 내 청춘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어디론가 유배되어 버렸다. 나는 내 청춘을 알지 못했고, 알았으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늘 서성거렸다. 어쩌면 영원히, 나는 알지 못할 것이다. 이건 정말 웃기지 않은 농담이라고 할 수 밖에.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팝나무의 계절  (0) 2015.05.10
왜 어떤 이들은  (0) 2015.05.05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0) 2015.04.24
따사로운 햇살과 연둣빛 바람  (0) 2015.04.22
벚꽃통신  (0) 2015.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