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왜 어떤 이들은

시월의숲 2015. 5. 5. 23:48

왜 어떤 이들은 시를 쓰고, 어떤 이들은 소설을 쓰는가. 왜 누군가는 문학적인 소양을 가진채 태어나는가. 신형철의 책을 다 읽고, 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의 <가면의 생>을 읽고 있고 있으려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서 에밀 아자르는 글을 쓸 수밖에 없었으며,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 무엇이, 어떤 불가항력적인 힘이 그를 문학으로 이끈 것일까. 흔히 작가들이 시 혹은 소설을 써내다가 중간에 한 번 쉬어가는 것처럼, '나는 왜 글을 쓰는가' 혹은 '나는 왜 작가가 되었나' 같은 글을 쓰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거기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어쨌거나 누군가는 시를, 누군가는 소설을 썼고, 우리는 그것을 읽었으므로. 내가 읽은 시와 소설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 생각(노력)없이 글을 썼는데, 그것이 소설이 되고 시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하물며 그러한 글들이 읽는 사람의 마음을 파고 든다면. 그런 것을 재능이라고 하는 것일까.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어느 독자가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냐고 묻자 그가 아무런 고민의 흔적도 없이 그것은 타고나야 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처럼, 그것은 많은 부분 범접할 수 없는 탁월한 재능의 소산인 것일까. 이것은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그 재능(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술술 쓴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심오하고 정교하기 그지없는)이란 정작 그것을 지닌 당사자에게는 지극한 노력의 산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그것을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부러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마치 본능처럼, 어쩔 수 없이 글을 쓰게 만드는 힘,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내면의 고요한 전쟁에 대해서. 그것이 <가면의 생>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자신의 정신 치료를 위한 산물일지라도 말이다. 자신을 비단뱀이라 생각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계속 읽다보면 알게 될까. 왜 드물게도 어떤 이들은 글을 쓸 수밖에 없는지, 왜 그렇게 태어날 수밖에 없는지를.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의 능력  (0) 2015.05.18
이팝나무의 계절  (0) 2015.05.10
웃기지 않은 농담  (0) 2015.04.29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0) 2015.04.24
따사로운 햇살과 연둣빛 바람  (0) 2015.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