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능력

시월의숲 2015. 5. 3. 14:08
체념은 해방이다. 원하지 않음은 능력이다. 내 영혼이 이미 나에게 주지 않은 중국을, 그 무엇이 나에게 줄 수 있겠는가? 내 영혼이 나에게 중국을 줄 수 없다면, 그 무엇도 나에게 중국을 줄 수 없다. 나는 만약 그래야 할 경우 내 영혼으로 중국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동양에서 부귀를 찾아다닐 수 있지만, 영혼의 부귀함은 찾을 수 없다. 내 영혼의 부귀는 나 자신이다. 나는 내가 있는 곳에 있다. 동양과 함께 혹은 동양이 없이.
느끼지 못하는 자는 여행을 해야 한다. 그래서 여행기라는 것들이 그토록 빈약한 경험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여행기는 오직 쓰는 사람의 상상력의 한도 내에서만 쓸모가 있다. 저자가 상상력이 있다면 그는 우리를 매료시킬수 있다. 그는 자신이 상상해낸 자연 풍경을 사진을 찍듯이 상세하게 묘사하고, 그것과 더불어 자신이 직접 보았다고 생각하는 자연 풍경을 어쩔 수 없이 덜 상세하게 묘사한다. 내면을 들여다볼 때를 제외하면 우리 모두는 근시안이다. 오직 꿈의 눈동자만이 안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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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 어떤 말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건 진정 위로인가? 자기합리화를 위해 위로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닌가? 나는 늘 여행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었으나, 그것은 언제나 열망 그 자체로서만 기능할 뿐, 그것이 동력이 되어 실제로 여행을 하는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나는 늘 상상으로만 여행을 꿈꾸었다. 생각해보면 여행뿐만이 아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들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려 하지 않았고, 그저 생각만으로 만족하면서, '언젠가는'이라는 생각을 끝에 하곤 했다.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사랑을 하지 못하듯, 나는 여행에 대한 판타지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누군가에게, 무언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만으로, 정작 나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마음은 가져본 적이 없지 않은가. 체념은 해방이고, 원하지 않음은 능력이라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 마음의 이면에는 체념하지 않기를 바라고, 늘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상처받지 않기 위해 미리 체념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는 편이 편하기 때문에? 오늘은 이상하게 페소아의 글이 나를 울적하게 한다. 그것은 내가 아직 페소아만큼 상상력이 풍부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