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타인들에게 비밀로 남도록 만들어졌다. 그래서 우리를 잘 아는 사람들이, 더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오인하게 된다. 나는 그 점을 특별히 의식하지는 않으면서 모종의 예술적 직감으로 내 삶을 자연스럽게 그런 식으로 형성해왔다. 나 자신조차 나를 금방 알아차릴 수 없는 비밀스럽고 희미한 개인으로.(217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때로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 욕망에 대해서라면 난 그 무엇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미아 와시코브스카(제인에어 역)와 마이클 패스벤더(로체스터 역)가 주연한 영화 <제인 에어>에서 로체스터가 제인 에어에게 말한다. '당신은 원래 금욕적이지 않아. 내가 원래부터 공격적이지 않은 것처럼.'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와 비슷한 문장이었던 것 같다. 페소아의 글을 읽으면서 <제인 에어>의 저 문장이 생각났다. 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영화 속 제인 에어는 그 누구보다 당당하고 순수했는데. 그녀는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살지 않았나. 자신조차 자신을 알아차릴 수 없는 비밀스럽고 희미한 사람이여,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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