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내가 바로 우주다

시월의숲 2015. 5. 16. 17:36

우리들 안의 영원한 여행자는 우리의 풍경이고, 그것이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소유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 소유하지 못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갖지 않았다. 우리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어떤 손을 어떤 우주를 향해 뻗어야 할 것인가? 우주는 내 것이 아니다. 내가 바로 우주다.(229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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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로 우주다.' 하지만 나는 사소한 것들로 인해 사소하게 앓고 있다. 인간들과의 관계를 갈망하고, 내가 갖지 못한 것에 집착하고, 내가 하지 못한 것을 동경한다. 나는 타인이 열망하는 것들을 똑같이 열망하면서도 짐짓 아닌 척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린다. 나는 거부의 몸짓으로, 그런 것들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님을 표현하려 애쓴다. 그럴 때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슬퍼지고, 초라해지지만 그것은 나 혼자만의 문제일 뿐이다. 아무도 나를 돌아보지 않고, 아무도 나를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내게 주어진 삶이란 그렇게 차가운 것임을 나는 이미 오래전에 깨닫지 않았던가? 나는 그 누구의 관심도, 그 누구의 걱정과 위로도 필요없고,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고민은 애초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 나는 그저 내 삶을 살면 된다. 그 과정에 겪는 사소한 고민들은 그야말로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쓴웃음으로 넘기거나, 사소하게 앓고나면 그만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풍경이다. 나는 풍경을 사랑한다. 페소아는 말했다. '우리들 안의 영원한 여행자는 우리의 풍경이고, 그것이 우리 자신이다.' 나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조차 소유하지 못한다.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내가 바로 우주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