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잠을 위한 찬가

시월의숲 2015. 6. 30. 22:33

어느 날 내가, 모든 예술을 하나로 합한 것만큼 천재적인 필력을 부여받는다면, 그때 나는 잠을 위한 찬가를 쓰겠다. 나는 잠보다 더 뛰어난 삶의 쾌락을 알지 못한다. 생명과 영혼의 완전한 소등 상태, 다른 모든 존재와 인간의 완벽한 배제, 기억도 환상도 없는 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는 시간...(289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

잠을 위한 찬가! 페소아는 천재적인 필력을 부여받는다면 잠을 위한 찬가를 쓰겠다고 말했지만, 그가 쓰는 모든 것이 이미 잠을 위한 찬가다. 잠에 빠져들기 전, 현실과 비현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모든 사물들의 윤곽이 흐릿해지고 모든 소리가 멀어지는 지점에서 그는 글을 쓴다. 나는 그런 페소아를, '불안의 서'를 사랑한다. 내가 언제나 원하는 것도 잠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오히려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행동은 어떤 의미인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깊은 잠에 빠져서 영원히 깰 수 없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잠은, 페소아가 말했듯, 지극한 삶의 쾌락이다. 생명과 영혼의 완전한 소등 상태이며, 다른 모든 존재와 인간을 완벽히 배제시키며, 기억도 환상도, 과거도 미래도 없는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잠에 빠져들기를 망설인다. 너무 쉽게 잠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한다. 잠자는 시간을 유예한다. 잠을 열렬히 갈망하면서도 잠에 쉽게 빠져드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에 나는 매번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내가 매번 후회하게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