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우리는 죽음이다

시월의숲 2015. 7. 22. 22:26

우리는 죽음이다. 우리가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 삶의 잠이며, 우리 실제 존재의 죽음이다. 망자들은 죽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를 혼동시킨다. 지금 산다고 믿는 자는 죽어 있다. 지금 죽는 자는 이제 삶을 시작하게 된다.

잠과 삶 사이의 관계는 우리가 삶으로 지칭하는 것과 죽음으로 지칭하는 것 사이의 관계와 같다. 우리는 자고 있으며, 이 삶은 우리가 꾸는 꿈이다. 이것은 시적인 은유가 아니라 실제다.

우리가 숭고한 행위로 치는 일들은 모두 죽음의 한 부분이며, 모두 죽음에 속한다. 삶의 무가치함을 고백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이상이 무엇인가? 삶을 부정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예술이 무엇인가? 하나의 조각상은 하나의 죽은 몸이다. 그것은 불변의 질료 속에 죽음을 잡아두기 위하여 창조되었다. 우리는 삶 속에 완전히 잠겨서 쾌락을 느낀다고 여기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가 삶과의 연관을 끊어버리고 우리 자신 속으로 잠길 때 느끼는 쾌락이며 흔들리는 죽음의 그림자가 주는 쾌락이다.

산다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새롭게 얻는 하루는, 삶의 줄어드는 하루이기 때문이다.(319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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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진부해서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는 말. 죽음처럼 죽어버린 말. 산다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다, 라는 말. 우리는 그 문장의 의미를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결코 느끼지 못하며,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하며, 고개를 돌린다. 죽음의 향기를 결코 맡을 수 없도록 몇 번이고 봉인하고 자물쇠를 채우고, 우리가 보이지 않는 저 깊숙한 곳 혹은 아주 먼 곳으로 보내버린다. 그렇다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마치 발악을 하듯 죽음을 외면하고, 죽음에 대해서 말하기를 꺼려한다. 하지만 저명한 누군가는 인간에게 죽음 충동이 있다고 했다. 인간이란 원래 無로부터 비롯된 존재이므로, 어쩔 수 없이 우리 내면에는 無로 돌아가려고 하는 충동이 있다고. 그렇다면 우리에게 죽음 충동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그렇게 달아나려고 하는 것일까? 하지만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우리는 그림자로부터 도망칠 수가 있는가. 페소아는 삶과 죽음을 전도시킨다. 삶은 죽음이고, 죽음은 곧 삶이다. 지금 산다고 믿는 자는 죽어 있고, 지금 죽는 자는 이제 삶을 시작하게 된다고 페소아는 말한다. 우리는 죽음이고, 삶이란 죽음의 잠 혹은 꿈일 뿐이라고. 굳이 죽음 충동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우리는 죽음을 향해가는 無의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페소아가 지적한대로 예술이라는 것에 대해 눈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