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되는

시월의숲 2015. 7. 11. 11:54

  한결같은 단조로움, 지루하고 똑같은 일상, 어제와 오늘의 결코 다르지 않음, 내가 살아 있는 한 이것은 나를 영원히 떠나지 않으리라. 그 덕분에 내 영혼은 생생하며, 작은 것들이 주는 자극을 크게 느낀다. 우연히 눈앞을 날아가는 파리 한 마리에 즐거워하고, 어느 거리에선가 간간히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흥겹고, 사무실 마감시간이 다가올 때의 엄청난 해방감, 그리고 휴일이면 끝없는 평안과 휴식을 만끽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되는 나 자신을 상상할 수 있다. 내가 실제로 뭔가 대단한 존재였다면 나는 그것을 상상할 수가 없으리라. 보조회계원은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는 꿈을 꾼다. 하지만 영국 왕은 그런 꿈을 꿀 수 없다. 왕이 되고자 하는 꿈의 가능성을, 영국 왕이라는 자리가 이미 차지해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현실이 그에게서 느낌을 앗아갔기 때문이다.(310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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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평안과 휴식을 만끽해야할 휴일이, 언제부턴가 내게서 사라져버렸다. 나는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와 아무런 감흥도, 의미도 없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물론 사무실 마감시간이 다가올 때의 해방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상사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대한 해방감일 뿐, 일에 대한 해방감은 아니다. 일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답이 없는 질문만 던진채 고개를 돌린다. 답이 없는 일을 해야한다는 건 예상보다 고통스러운 일이다. 마음 한 켠에 해소되지 않는 묵은 짐이 켜켜이 쌓인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들의 말은 엇나간 채 좀처럼 같은 지점을 향하지 않는다. 지시를 내리는 상사는 지시만을 내린채 신속한 처리를 종용하고, 담당자는 길을 찾지 못해 헤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당신의 지시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밝혀야 하나? 하지만 나는 묵묵히 서류를 뒤적인다. 전화를 건다. 형광펜을 찾아 선을 긋는다. 숫자를 기입한다. 비교를 하고 분석을 한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의도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서 일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야비한 일인지 깨닫는다. 당신의 의도는 어느 한 지점을 향해 있지만, 그것은 전체적인 그림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것은 마치 표적수사와도 같지 않은가. 일단 대상을 정해놓고 일을 시작한다. 모든 것이 오직 그 하나만을 위해 만들어지고, 검토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디 그것이 그 하나만의 문제던가? 숲이 아니라 나무만을 본다면 영원히 그 숲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 발언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다. 나는 다만 상사의 지시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파악한다. 그리고 그것이 왜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당신이 말한 것이 왜 불합리한지를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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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는 페소아의 글을 읽는건지도 모른다. 페소아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의 대부다. 그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되는 자신을 상상한다. 그는 자신이 뭔가 실제로 대단한 존재였다면 그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이 되는 나 자신을 상상할 수 없다. 나는 페소아처럼 될 수 없다. 나는 내 협소한 상상력의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상상이란 고작 책을 통해 읽은 것 뿐이다. 나는 행동하지 않는다. 페소아는 물론 나와는 달리 여행을 하지 않아도, 행동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고, 책을 통한 상상이야말로 최고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중국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을 상상할 수 있다고 말했듯이.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답답함은 무엇일까.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감지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견고한 벽은 무엇인가. 그 벽은 내가 만든 것인가, 아니면 외부로부터 생겨난 것인가. 분명한 사실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고, 그 사실만이 내가 나임을 인지할 수 있는 유일한 관념이라는 것이다. 일상이 단조롭기 때문에 오히려 생생할 수 있는 영혼을 가진 페소아. 나는 그런 페소아를 통해 모든 것이 되는 나를 상상한다. 나는 비로소 위안을 얻는다.